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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19. 2019

나는 늘 고흐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20세기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화가. 불운의 인생을 살다 간 비운의 화가. 이 다양한 수식어는 모두 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83~1890)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미들 네임을 Van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의 미들 네임은 Willem이다.)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말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반 고흐에게 열광한다.


사람들은 많은 이유에서 그와 사랑에 빠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때로는 그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에게 빠지기도 한다. 이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내가 반 고흐에게 빠졌던 순간'과 '나는 왜 반 고흐를 좋아하는가'를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빠졌던 순간도, 그를 좋아하는 이유도 없었다. 단지 그에게 서서히 젖어든 과정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자연스럽게 그에게 스며들었고 이제는 그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삶'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어두운 삶을 살았다. 어쩌면 나는 '우울한 삶'을 살았던 인물들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반고흐와 늘 함께했던 순간들.

오랜 시간 반 고흐를 좋아하면서도 그와 관련된 어떤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바로 김한민 작가가 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페소아-복수의 화신' 때문이었다. 작년에 읽었던 이 책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20세기의 러시아 기호학자 유리 로트만을 연구해온 김수환 형이 대화 중에 흥미로운 소회를 밝혔다. 이제 그에게는 로트만이 마치 '동시대인'처럼 느껴진다는 것. 속한 시대도 공간도 다른 죽은 사람이 동시대인이라니 대체 무슨 뜻인가?
(중략...)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김수환 형이 말하던 동시대인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중략) 타인, 그것도 나라와 언어와 시대가 다른 누군가의 생각과 창조물을 폭넓게 읽고, 다시 읽고, 보고, 듣고, 음미하고, 또 번역하면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작품 하나의 의미에 천착하는 것, 그를 잘 안다는 사람들과 접촉하여 그에 관해 묻고 또 답하고, 그와 관련된 출판문이라면 무엇이든, 그와 관련된 행사라면 어떤 것이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쫓아다니는 것이다. 이는 어떤 화두나 주제에 집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한 사람이 가졌을 법한 시선들에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게 그를 대변하고 변호하며, 그에 관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자주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일이다.
(중략...)
이쯤 되면 거의 아무것도 공유하지 못하면서 물리적인 신체만 덩그러니 같은 시간대에 속해 있어 동시대인으로 분류되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그가 훨씬 더 동시대적이라는 게 정말로 맞는 말이다.

클래식 클라우드4 - 페소아X김한민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프롤로그 일부.


동시대인을 맞는 작업. 그것이 바로 내가 오랜 시간 반 고흐와 함께 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와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그의 흔적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의 그림을 그저 느끼는 대로 기록할 것이고, 그가 좋아했던 것을 감상하며 함께 좋아해 보려고 한다. 때로는 그가 존재했던 그 공간을 나도 함께 느끼기 위해서 훌쩍 떠나기도 할 것이다. 여태 내가 그를 좋아하던 방식으로 말이다. 아마 그의 그림이나 인생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잘 알지 못했던 '반 고흐'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주기를, 그리고 또 이를 통해 그를 나와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김한민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했던 또 다른 이야기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곳이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우리에게는 '영향을 선택할 권리', 좋은 영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중략) 나는 내가 영향받을 사람과 환경을 최대한 능동적으로 택하고 싶었고, 고민과 타협 끝에 포르투갈과 페소아를 선택했다. 다행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영향의 초기인자들일 뿐, 그 결정의 의미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페소아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모른다. 나도 한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을 이만큼 내 삶에 깊숙이 받아들이게 될 줄 몰랐다.

클래식 클라우드4 - 페소아X김한민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 프롤로그 일부.



그의 걸음을 따라갔던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aboutjina/6

https://brunch.co.kr/@aboutjin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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