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outjina Feb 01. 2020

당신, 나와 같은 꿈을 꾸나요?

반 고흐의 꿈


꿈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꿈을 명확하게 정의한 것은 없다. 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꿈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꿈은 시간과 장소, 등장인물도 일정하지 않고, 연속성으로 일어나지도 않는다. 또 꿈의 내용은 원인과 결과가 없고 이야기도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 말도 안 되는 꿈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꿈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우울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꿈이 그저 하나의 무의식일 뿐이라고 치부하지만 꿈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심지어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하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머릿속에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로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꿈은 매일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난 어릴 때부터 꿈을 잘 꾸는 편이었다. 무서운 꿈을 꾸고, 신기한 꿈도 꾸고, 어릴 때 꿨던 꿈을 성인이 되고 나서도 반복적으로 꾸기도 했다. 가끔은 미래를 예견하는 듯한 믿기 힘든 꿈을 꾸기도 했는데, 이 꿈을 예지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꿈과 현실은 남들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나의 고민이 더 큰 악몽으로 꿈에 나타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꿈에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잠들기 바로 직전에 생각하던 것이 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남들은 깨어나면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나는 꿈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의미가 있는 꿈은 평생 기억하기 위해 꼭 메모를 해두었다. 그 때문에 나에게는 꿈을 적어놓은 꿈 노트가 있을 정도이다.

 

나의 꿈은 대체적으로 내가 남긴 흔적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일상에서 듣고 경험했던 것들을 머리에 저장하고 그것들이 기이한 형태로 만나서 자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꿈은 다시 나에게 남아서 일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삶과 꿈은 늘 같은 선상에 있다. 일상에서의 경험으로 내가 만들어지듯 꿈은 현실의 나에게 새로운 영감이자 지표가 되어준다. 물론 현실의 내가 꿈에 더 많은 영향을 주지만, 현실의 나는 늘 꿈속의 나를 동경한다. 꿈속에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나의 무의식이라면 그 또한 내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꿈은 나에게 또 다른 삶이다.

 

이 글도 얼마 전 꾸었던 꿈으로부터 시작됐다. <고흐, 영혼의 문으로>의 리뷰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날도 나의 의식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이야기가 잠이 깬 후에도 한참을 나를 괴롭혔다. 난 한동안 그 꿈의 잔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렇게 꿈에 오래 빠져있을 때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 때도 있다. '그 꿈에서 일어났던 일이 혹시 현실에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일이 곧 현실에도 똑같이 일어나지 않을까?' 반복되는 상상들이 더욱 그 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나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흐도 나처럼 꿈을 자주 꾸었을까? 혹시 그가 꾼 꿈이 그의 그림에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그는 그가 만들어낸 꿈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의 꿈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의 꿈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가 만든 넓고 깊은 무의식의 세계 중 난 오늘 그의 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과연 난 그의 꿈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1889년 1월 21일로 가봐야겠다.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Vincent van Gogh, 1889 / 개인 소장


고갱에게 언제나 너의 빈센트가

1888년 12월 23일, 고갱과의 다툼에서 귀를 잘랐던 그는 그 사건으로 정신 병원에 들어간다. 추운 12월에 습한 독방에서 끈에 묶인 채 홀로 지냈다고 하니 갇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2주를 보낸 뒤 그는 퇴원 허락을 받는다. 1889년 1월 21일, 그날은 고흐가 귀를 자른 지 딱 한 달 뒤였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그는 노란 집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치료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고갱과도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는데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던 첫 번째 편지와는 다르게 그는 두 번째 편지에서 꽤 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고흐는 두 번째 편지에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의 열병이나, 신경질이나, 광기 속에서 (나는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떻게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내 생각은 많은 바다를 항해했다. 심지어 '네덜란드 유령선'과 '오를라' 꿈도 꾸었는데 그때 나는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다른 때는 노래를 할 수 없는 내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병에 걸리기 전에 색채 배열을 하고 싶었던 늙은 유모(요람을 흔들며 아기를 재우는)의 노래를 불렀는데, 여인이 선원을 잠에 빠지게 하려고 노래 불렀던 것을 생각하며 불렀다.

1889년 1월 21일 폴 고갱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이 편지에 낯선 단어가 등장한다 '네덜란드 유령선'과 '오를라(l’horla)'이다. 고흐의 꿈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낯선 단어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악몽과 악몽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이라 불리는 이 배는 15-16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전설의 유령선이다. 이 편지에 등장하는 '네덜란드 유령선'은 바로 그 유령선을 의미한다. 전설에 의하면 네덜란드인 선장 반 데르 텍켄(Van der Decken)은 폭풍우 중에도 항해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며 배를 이끌고 항해를 강행했다. 결국 배는 침몰하고, 그는 신의 뜻을 거역한 저주로 영원히 이 배와 함께 해상을 방황하게 된다. 19세기, 20세기에도 종종 목격담이 들리곤 했는데 유럽에서 이 유령선의 목격은 파멸의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 병원에서 2주라는 시간을 보낸 뒤 돌아온 노란 집에서 그는 네덜란드 유령선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Flying Dutchman,  Albert Pinkham Ryder, 1887 /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소장


네덜란드 유령호와 함께 언급되는 단어가 또 있다. '오를라(l’horla)'이다. 오를라는 19세기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소설이다. 이 책에는 고독 속에 미쳐가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맞서 싸우는 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다. 서술자는 평온한 일상을 살다가 점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무서운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그 무서운 존재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서술자의 혼란은 점점 깊어지고, 불안감은 고조된다. 이 책에서 서술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그 존재, 바로 '오를라(나중에 이름 붙여진 존재)'이다. 서술자는 결국 그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파멸한다. 알 수 없는 존재와 정신착란처럼 보이는 서술자, 그리고 결국 그 끝에 스스로 파멸하게 되는 한 인간. 고흐는 이 꿈에서 네덜란드 유령선과 함께 오를라를 보았다.


그는 이렇게 꿈에서 두 가지의 불안과 만났다. 만나게 되면 파멸하게 된다던 저주의 상징인 '네덜란드 유령선'과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 '오를라'. 그는 이미 이 꿈을 통해 고갱에게 자신의 불안과 괴로움을 전했다. 그는 고갱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노란 집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고갱을 원망하지 않았던 고흐는 이 편지를 통해 고갱이 떠난 것을 후회하길 바랐던 것일까.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아니면 이미 인지하고 있을지 모르는 그의 고통이 무의식을 통해 꿈이 되었다. 아마 이 모든 의미를 알고 있는 고흐라면 이 꿈을 통해 본인의 상태를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자장가

고갱에게 편지를 쓰기 하루 전인 1월 20일, 반 고흐는 룰랭 가족이 아를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체부 조셉 룰랭이 승진이 되면서 마르세유로 떠나게 된 것인데, 평소에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를 했던 고흐는 그 소식에 크게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날 밤 고흐는 꿈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들을 만났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 직전까지 우체부 조셉 룰랭의 아내인 오귀스틴 룰랭의 초상화 연작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편지에서 새로운 캔버스에 룰랭 부인의 초상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연작의 색채 배열에 대해 만족스럽게 소개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룰랭의 가족이 아를을 떠났고 결국 그 그림은 그녀가 떠난 후 완성된다. 그때 그렸던 그림이 바로 이 룰랭 부인의 초상화이다.


Augustine Roulin(‘La berceuse’), Vicent Van gogh, 1889/Museum of Fine Arts 소장


이 연작의 제목은 오귀스틴 룰랭(자장가)이다. 왜 이 그림에 자장가라는 이름을 붙었을까? 그 답은 손에 쥐고 있는 끈에 있다. 이 끈은 룰랭 부인의 딸인 마르셀 룰랭이 있는 요람에 연결된 끈이다. 룰랭 부인은 이 줄로 요람을 흔들며 아이를 재웠고 그때 그녀는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렀을 것이다. 이 자장가를 연작으로 무려 6점을 그렸다고 하니 그 연작을 그리는 긴 시간 동안 고흐는 그녀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자주 들었을 것이다. 이 그림보다 이 그림에 담겨있는 그녀의 노래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고흐의 꿈에 그 노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다른 때는 노래를 할 수 없는 내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병에 걸리기 전에 색채 배열을 하고 싶었던 늙은 유모(요람을 흔들며 아기를 재우는)의 노래를 불렀는데, 여인이 선원을 잠에 빠지게 하려고 노래 불렀던 것을 생각하며 불렀다.


노래를 할 수 없는 그를 노래하게 만들었던 그녀의 자장가, 그 자장가의 잔상은 고흐에게 오래 남았다. 그 증거가 바로 고흐가 꾼 이 꿈이다. 그녀의 연작을 그리며 들었던 자장가를 따라 부르는 고흐의 모습이 꿈에 등장한다. 파멸의 상징인 '네덜란드 유령선'과 '오를라'를 만난 순간 그는 유모가 자장가를 부르는 노래를 생각하며 그 노래를 부른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낀 순간 그가 찾은 것은 어머니의 자장가였다. 아이를 생각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을 그 자장가로 그는 위안을 얻었다.


악몽이 다시 꿈으로

고흐의 정신 질환은 귀를 자른 그 시점을 시작으로 악화된다. 물론 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만은 아니다. 정신이 맑아 기분이 좋은 날도 많았지만, 우울감이 그를 지배하면 그 속에서 오래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귀를 자른 한 달 동안 그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히 귀를 자르고 바로 가게 되었던 정신 병원은 그의 상태만 악화시킬 뿐이었다. 힘든 시기에 그는 혼자였다. 그 사건을 이후로 그를 떠났던 고갱,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유일한 테오, 그리고 가족들조차도 그의 곁에는 없었다. 의지할 곳 없이 혼자 그 시간을 버티던 고흐에게 룰랭 가족의 이사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오를라'의 서술자에게 투영시켰다. 본인을 괴롭히는 목소리, 알 수 없는 존재, 소설의 서술자와 같이 정신 분열증이었다. 그렇게 꿈을 헤매던 그는 결국 만나면 파멸한다는 '네덜란드 유령호'를 만났다.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네덜란드 유령호가 본인을 죽음으로 태워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결국 그는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를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곁에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존재 바로 '어머니'이다. 그에게 이 순간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머니였다. 힘든 일이 있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말 없이 기대고 울 수 있는 품이 그리웠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울고, 떼쓰고, 한 없이 투정 부리면서 그는 그렇게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룰랭 부인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요람을 흔들며 아이를 재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란 존재, 그 존재를 보며 한없이 맑고 깨끗한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폭풍우를 헤치며 항해하던 배로 그렇게 한 줄기 빛이 드리웠다.




고흐의 편지에는 '꿈'이라는 단어보다 '악몽'과 '불면증'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난 더더욱 그의 꿈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찾게 된 1889년 1월 21일의 편지. 꿈이란 이야기를 푸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편지 하나를 해석하는데 거의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영어 번역과 프랑스 번역까지 주변의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번역했지만 완벽한 번역은 힘들었다. 번역은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해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편지의 해석뿐 아니라, 이 시기의 고흐에게 일어났던 사건, 그가 그렸던 그림까지 자료 조사만 한 달이 걸렸다. 나중에 정말 '애증' 고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없이 해석과 번역에 몰두하다 보니 천천히  속에 담겨있는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한 완벽한 해석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정신 분열을 앓고 있었던 만큼 이것이 정말 자면서 꾸었던 꿈인지 아니면 환각을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Dream/rêvé )이란 단어를 온전히  의미로만 해석했다. 편지를 반복적으로 읽은지  달쯤, 비로소 그의 글과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과 문법으로  편지를 해석하는 것은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써내는 글이 아닌, 마음을 전하는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의도가 보이는 순간  다시 한발 고흐에게 다가간 느낌이었다. 나는  편지를 통해 진정한 쾌감을 느꼈다. 앞으로도 그의 생각에 깊게 들어갈수록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맛보겠만,  고뇌가 진정 그를 만날  있는 방법이라면 험한 길이라 할지라도  길을 계속  것이다. 오늘은 왠지 고흐의 꿈을 꾸게   같다. 늦었으니 이만 자러 가야겠다.  꿈에서 만나 빈센트. 당신을 생각하며...


겁먹지 말고 꿈을 조금 더 크게 가져
- 영화 '인셉션' -


매거진의 이전글 고흐에게 가는 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