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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Feb 07. 2020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고흐와 함께하는 생일

매년 2월 6일, 내 생일만 되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 따뜻했던 1월의 겨울을 보내고 2월이 되자마자 올 해도 어김없이 생일과 함께 추위가 찾아왔다. 지구가 주는 생일선물인 건가...? 작년 생일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맞았고, 재작년 생일에는... 무엇을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생일에 대한 기억이 전부 이런 식이다.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이라지만 사실 난 생일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다. 어릴 때는 방학 중에 생일이었기 때문에 늘 조용히 넘어갔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생일보다는 출근이 먼저였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일을 하느라 챙기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그나마 생일이 하루 전인 언니 덕분에 생일을 잊지 않고 넘어갔는데, 우리 가족은 별 다른 생일 파티 없이 2월에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으로 생일 축하를 대신했다.


2020년은 여행을 가지 않는 해이다. 나름 여행 안식년인 셈이다. 그래서 올해 내 생일은 더욱 조용하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느낀 것일까? 올해는 유난히 많은 축하를 받았다. 친한 지인부터, 회사 동료, 그리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던 사람들까지 연락을 보내왔다. 나는 이런 축하, 새해 덕담 혹은 형식적인 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쏟아져 들어오는 연락에 나 또한 형식적으로 답변을 해야 하고 일률적으로 보내는 나의 답변 또한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고마워', '우리 언제 봐야 하는데', '조만간 밥 먹자'와 같은 답변에 내 마음이 담기긴 한 것일까? 그리고 그때 우린 조만간 만나서 밥을 먹긴 먹었던가?


하지만 올해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축하 연락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물론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생일 알람에 떠 있는 나의 얼굴을 보고 연락을 한 사람들이었지만 눈으로 슬쩍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서 나에게 보낸 그들의 정성이 감사했다. 몇 년 동안 그 알람에 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그냥 슬쩍 보고 넘겼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 번쯤은 '나도 축하를 전해볼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에이 됐다'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축하를 보냈고 그 진심이 이번에는 유난히 날 감동시켰다. 편지에 담긴 진심이 그리고 그들의 축하가 얼마나 오랫동안 진한 감동을 남기는지 유난히 잘 알고 있는 시기라 그랬던 것 같다. 요 몇 달 고흐의 편지를, 그리고 테오와 많은 사람들의 편지를 반복적으로 읽고 있는 시기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내 생일이 오기 한참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내 생일에 맞춰 이런 글을 쓰면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연락을 받으니 이 주제를 참 잘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오늘 이렇게 마음을 글에 담아 편지를 보내며 축하를 했던 고흐의 생일(3월 30일)과 함께 보내려고 한다. 우리의 생일은 다른 날이지만, 그날을 공유하면서 나에게 축하를 보내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고 싶다. 그때의 고흐가 마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1살, 영국 런던에서 성인이 된 고흐

1874년 고흐는 이 시기에 영국 런던에 있는 '구필화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읽으며 생활할 때였다. 그리고 고흐는 생일이 되기 전에 아버지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데 그 편지에는 1 길더(네덜란드 화폐)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1 길더는 커프스링크(짧은 고리나 체인으로 연결하여 셔츠나 블라우스의 커프스를 여미어 고정하는 장신구)를 사라며 테오가 보낸 선물이었는데, 고흐는 그 돈을 받고 바로 한 쌍의 커프스링크를 구매했다. 그리고 테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그 속에는 약간의 염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낸 편지에서 커프스링크 한 쌍을 사라고 네가 넣은 1 길더를 받았다. 고맙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나보다 네가 돈이 더 필요했잖아.

1874년 3월 30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사실 21살 고흐가 받은 선물(1 길더)에는 약간에 반전이 있다. 사실 이 돈은 테오가 보낸 돈이 아니라 반 고흐의 아버지가 보낸 돈이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이 돈을 보내면서 테오가 보내는 선물이라고 포장을 했다. 아마 고흐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지만 형편이 안 되는 동생 테오를 위해서 마음을 함께 담아 보냈던 선물이었던 것이라 짐작된다. 참 마음이 따뜻한 가족이다.


아버지는 고흐에게 그가 원하는 대로 무언가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1 길더는 그의 시계 사슬에 어울리는 커프 링크를 위해 네가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고, 우리는 고흐가 정말로 테오를 대신해서 그것들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1974년 3월 26일 반 고흐의 어머니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30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화가가 된 고흐

고흐는 30살 생일을 더없이 행복하게 보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그림을 그리는 일을 막 시작해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모든 것이 신기했고,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시 빈센트는 헤이그에 살면서 유명한 화가 안톤 마우브로부터 레슨을 받고 있었다. 생일 3일 후 빈센트는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내 생일에 대한 너의 좋은 축원 고마워. 마침, 나는 매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 나에게는 훌륭한 모델(땅을 파고 있는 남자)이 있었기 때문이야.

1883년 4월 2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 시기에 그는 사람의 모습을 탐색하고 그 모델을 그리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편지에 나와있는 땅을 파고 있는 남자 그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테오에게 보냈던 다른 편지를 통해서 이 시기에 그렸던 그림을 볼 수 있다. 고흐는 1883년 3월 31일에 이 그림을 시작했다.


Woman sewing with a Girl, van gogh, 1883 / Van Gogh Museum 소장


37살, 프랑스 파리에서 고흐의 마지막 생일

고흐의 37번째 생일, 이날은 그의 마지막 생일이었다. 그는 같은  7월에 사망했다. 그는 생일인 3 즈음에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테오는 걱정이 되어 렘브란트의  가지 복제품과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며 그를 격려하려고 했다.


내일 형의 생일날 형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형에게 축하가 될까? 아니면 아직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상태에 있어? 낮에는 무엇을 하고 있어? 주위를 다른 곳을 돌릴 만한 일이 있어?

(중략)

내가 렘브란트의 애칭 복제품을 몇 가지 보내줄게. 그것들은 정말 아름다워. 당신에게 악수를 보내며... 그리고 형을 사랑하는 나를 믿어줘.

1890년 2월 29일 테오가 형 반 고흐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동생 테오는 편집와 함께 이와 같은 복제품들을 보낸다. 위 작품의 원작들은 모두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생일을 맞은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과 친척들도 함께 축하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약혼이나 결혼, 또 다른 행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반 고흐와 그의 가족들의 편지에도 생일 축하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반 고흐는 본인 생일에 대한 축하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가족들의 생일도 큰 행복으로 축하해 주었다. 종종 그는 타인의 생일에 의미를 담아 본인의 그림을 선물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보다 값비싼 선물은 없겠지만 그때는 어찌 보면 볼품없는,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신기하게 나도 오늘 고흐의 그림,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선물로 받았다. 물론 작은 그림액자 선물이었지만, 내 생일에 고흐라니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었다. 나의 특별한 하루가 또다시 이렇게 고흐와 함께 완성되었다.


사실 이 글을 시작했던 것은 조용히 나 혼자 내 생일을 자축하자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예상외로 너무 많은 축하를 받았고 또 과분한 선물도 많이 받게 되었다. 모든 것에 감사한 하루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것은 과분한 선물이 아닌 그들의 마음이 담긴 한마디의 문장이었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의 마지막 또한 고흐가 그의 여동생인 빌레민(Willemien van Gogh)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냈던 편지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늘 나의 생일을 보내며,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의 생일을 축하하며. 생일 축하해.


나 또한 너의 생일을 축하해야 한다. 네가 좋아할 만한 내 작품을 보내주고 싶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 작은 책과 꽃을 따로 떼어 놓으려고 한다.

1888년 3월 30일 빌레민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Sprig of almond blossom in a glass with a book, Van Gogh,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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