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월 16일)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 첫눈은 아니지만 휘몰아치는 눈은 오랜만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꽤 많은 눈이 내렸는데도 눈은 쌓이지 않고 금방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에는 소복이 하얀 눈이 쌓였다. 괜히 그 길을 찾아 사뿐사뿐 눈을 밟아보았다. 눈을 밟으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니 불과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한 번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서울 전 지역을 마비시킬 때까지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는 우산을 쓰고도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쳤고, 중학교 때는 눈이 올 때마다 엄마 차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겨울마다 전쟁이었다. 대학교 때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로에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였고 한 번 그렇게 눈이 오면 며칠 동안은 길에서 미끄러지는 차들의 곡예가 이어졌다.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눈이 넘치게 많이 오는 곳들이 있지만 도심에서는 이제 그런 함박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에게 겨울은 눈의 계절이다. 하지만 요즘 어린이들에게 겨울은 가을보다 조금 더 추운 계절이다.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봄을 '벚꽃 엔딩'으로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나는 '봄'을 모르는 아이보다 '눈'을 모르는 아이들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눈의 세상을 보여줄 수 없다니 이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을 잘 지키지 못한 벌을 우리가 아닌 아이들에게 받게 하는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인지 지저분하게 녹아내려 싫었던 눈이, 이제는 반갑기까지 하다.
순수함을 대표하는 눈은 티 없이 맑은 하얀색이다. 사람들은 깨끗함을 상징하는 색인 이 하얀색을 좋아한다. 하얀색은 일반적으로 순결, 순수함, 깨끗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수북이 눈으로 덮인 세상을 보고 차갑다는 이미지보단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것은 아마 하얀색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것이다. 또 하얀색은 청결, 위생, 정직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특이하게 이 색에는 고독과 공허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오랜만에 내린 눈을 보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제일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어려운 색인 이 하얀색을 과연 화가들은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을까. 난 여기서 고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고흐는 이 하얀색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늘은 고흐의 순수함과 닮아있는 하얀색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의 고독을 담은 눈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반 고흐는 짧은 일생동안 네덜란드와 프랑스 여러 지역에 흔적을 남겼다. 자의 혹은 타의로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며 생활했는데 고흐가 남긴 편지를 통해 그 지역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특히 그는 눈이 내린 도시의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외에 편지로도 남겼는데, 그가 표현한 겨울의 모습은 쓸쓸함하지만 왠지 모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난 이 아름다움을 순결한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싶다.
너는 종종 너의 묘사를 통해서 나에게 파리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너에게 나의 창문 밖에 있는 눈 덮인 마당을 볼 수 있게 해 줄게.
그 집의 코너를 살짝 보여줄게. 거기에는 같은 겨울날의 두 가지 인상을 볼 수 있다. 시는 어디에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것을 종이에 싣는 것은 보기만큼 쉽게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이 낙서 위에 수채화를 그렸는데, 그것이 충분히 생기 넘치거나 활기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지난주에 우리가 겪었던 그 추운 날들 중 이번 겨울의 가장 사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눈과 기이한 하늘과 함께 너무 아름다웠어. 그리고 오늘 눈이 녹은 것은 더 아름다웠다. 그것은 전형적인 겨울 날씨였는데 내가 그것을 이렇게 말해도 될까? 그것은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날씨였다. 가장 평범한 것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근면한 우편마차의 시대(우편 마차가 다녔던 예전 시대)의 이야기들과 본능적으로 연관시킨다.
예를 들어, 여기에 낙서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몽상했던 것이다. 이는 부지런함이나 또는 어떤 이유의 연착 때문에 늦게 마을 여관에서 밤을 보내야 했던 신사를 보여준다. 이제 그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추위에 대비해 브랜디 한 잔을 주문하는 동안 그는 여관 주인의 부인(소작농의 모자를 쓴 여자)에게 돈을 지불한다. 그러나 아직 매우 이른 아침이다. 그는 우편 마차를 잡아야 한다. 달은 여전히 빛나고 반짝거리는 눈은 바의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고 물건은 기묘하게 이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고 낙서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에서 보면 너는 아마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거야. 다시 말해서 최근의 모든 것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종이에 낙서하고 싶은 느낌을 갖게 한다. 간단히 말해서, 눈(snow)의 영향이 있을 때 자연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흑백 전시이다.
1883년 3월 18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서른 살 청년 반 고흐는 눈이 내린 헤이그의 모습을 편지에 담아 동생 테오에게 보낸다. 편지지에 낙서를 그려 보냈는데 바로 위 두 그림의 왼쪽 그림이다. 이 바깥 풍경이 바로 고흐의 눈에 담긴 창문 밖 헤이그의 모습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집 앞에서 한 남자가 눈을 치우고 있다.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시기여서 그런지 아직은 그의 스타일이 많이 묻어나지 않지만 겨울의 쓸쓸함이 잘 담겨있는 그림이다. 그는 이후, 낙서 위에 물감을 더해 수채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 그림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눈이 내려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고 고흐는 이전 시대의 한 신사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편지에 낙서라고 말하는 그 신사의 스케치를 그려서 함께 보냈다. 바로 위의 두 그림 중 오른쪽 그림이다. 어느 곳에도 노골적으로 겨울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추위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시간이지만 신사는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바에 내려왔다. 그는 추위를 대비해 브랜디 한 잔을 시키고 우편마차를 기다렸다. 야외가 아닌 실내를 그린 그림임에도 바의 작은 창으로 통해 보일 밖의 모습이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신사의 눈을 통해 보일 창문 밖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동이 틀 무렵의 이른 새벽, 아직은 한산한 거리, 그리고 밤 사이에 소복이 쌓인 거리의 모습. 어스름한 이른 새벽의 빛이 밤 사이에 내린 눈의 투명한 빛과 함께 신사에게 살포시 내려앉는다.
1888년 2월 20일, 고흐는 파리에서 출발해 프로방스를 거쳐 마침내 아를에 도착했다. 문학에서 만났던 프랑스 남부는 강한 햇볕과 빛을 연상시키는 곳이었고, 그는 그것을 기대하고 아를로 향했다. 그는 아를에 대략 오후 5시쯤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그를 맞이했던 것은 아를의 한파였다. 이 같은 겨울 한파는 그의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아를에 도착한 날 오후 8시부터 폭설이 내렸고, 그 눈은 아를의 모든 도시를 하얗게 만들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아를에서의 첫 편지는 폭설이 내린 다음날 쓰였다.
여기에는 최소 60센티미터의 폭설이 내렸고,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아를은 나에게 브레다(브라반트의 브레다 지방_네덜란드 남부 도시)와 몬스(보리나지의 몬스 광산 마을_벨기에 남서부 도시)보다 더 커 보이지 않는다. 타라스콘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는데 기묘하게 뒤섞인 거대한 노란 바위들이 인상적인 형상이었다. 이 바위들 사이의 작은 계곡들에는 올리브 녹색이나 회색을 띤 녹색의 잎을 가진 작은 둥근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레몬 나무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 아를의 땅은 평평해 보인다. 나는 포도나무를 심은 붉은 흙이 덮인 장엄한 대지와 아주 우아한 라일락을 배경으로 한 산을 보았다. 그리고 하얀 산봉우리와 눈처럼 환하게 빛나는 하늘, 그 아래 눈에 덮여있는 풍경은 마치 일본의 겨울 풍경과 같았다.
1888년 2월 21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2월 20일부터 내린 폭설은 나흘 뒤인 25일까지 쉬지 않고 내렸고, 그 후에는 비가 되어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눈을 만나고 5년 뒤, 그는 아를에서 이와 같이 눈을 만났다. 5년 동안 고흐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막 미술을 정식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30살의 고흐는 5년 뒤 확고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아를로 왔다. 편지의 글만 보더라도 달라진 점이 보이는데, 5년 전 고흐는 눈앞의 사실보다 상상을 하여 그림을 그렸고, 또 자연보단 인물에 집중했다. 하지만 5년 뒤 고흐는 눈앞에 있는 자연을 더 명료하게 묘사한다. 상상 속의 인물이 실존하는 자연으로 옮겨간 샘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고흐는 눈이 덮인 아를의 풍경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아를에 도착하자마자 시작 된 연구는 이렇게 한폭의 그림에 담긴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풍경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눈이 내린 배경과 사람의 등장은 모두 같지만 고흐의 시야가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고흐의 시각에서부터 들판과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저 멀리 보이는 빨간색 지붕의 집까지 그는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을 모두 담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는 집 뒤에 멀리 보이는 산까지 명확하게 표현했는데 눈에 덮인 아름다운 아를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으려고 했던 고흐의 연구가 돋보인다. 또한 인물을 그림 한쪽의 대각선 길을 걷게 함으로 풍경에 튀지 않고 잘 스며들게 만들었다. 5년 전 고흐의 스케치와는 다르게 색을 입은 수채화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그림에 보이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림을 그린 고흐가 외로움을 느꼈던 것일까. 서른다섯 살 고흐의 겨울은 고독하다.
눈(Snow)에 대한 고흐의 그림에 관심 갖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흐는 색을 다채롭게 사용해 그림을 표현하는 화가로 유명한 만큼 화려한 색감이 두드러지는 그의 그림에 끌렸던 것도 사실이다. 눈과 고흐라니... 사실 연관시키기 쉬운 범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보게 된 고흐의 눈의 세상은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약간은 어두운 흔적을 갖고 있는 하늘 아래, 살포시 내려않은 하얀 눈에 덮인 그의 세상. 색을 화려하게 쓰지 않아도, 강렬한 색감이 들어있지 않아도 그의 그림은 살아 숨 쉰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서울에 있는 모든 눈은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의 감성은 글을 시작했을 때와 많이 변해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눈에 덮인 아름다운 마을 속에 있는 고흐를 계속 상상해보게 되었다. 순수한 고흐와 또 고독을 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과 참 많이 닮아있다. 아를에서의 그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실 이 글을 시작했을 때 눈과 함께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하얀색의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존재하지 않는 색인 하얀색을 화가들은 그림에 담아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런 결과를 만들 때까지 그들은 계속 고민하고 고뇌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색에 대한 화가들의 고민을 담아내고 싶었고 특히 고흐가 생각한 하얀색에 대한 단상을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눈과 함께 짧게 풀어낼만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색에 대한, 그리고 특히 하얀색에 대한 그의 연구는 다음에 풀어내려고 한다. 아쉽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눈의 이야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제 곧 겨울도 끝이 난다. 그러고 나면 생명의 계절 봄이 오겠지. 겨울이 지나기 전에 이 이야기를 풀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이 글 덕분에 고흐의 새로운 그림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다. 오늘은 생 레미 요양병원에서 모네의 그림을 모작했던 고흐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고흐의 그림 덕분에 내년 겨울에는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눈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고마워 빈센트. 내년 겨울에 또 만나.
몸이 아프고 축축하고, 눈이 녹아 내리고 있는 동안,
나는 밤중에 일어나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연이 나에게 그렇게 감동적이고 예민한 것처럼 보인 적은 없었다.
- Vincent Van Go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