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outjina Mar 04. 2020

내 옆에 놓인 죽음

2020년 2월 19일, 코로나19로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다. 확진자가 총 104명을 막 넘어설 때였다. 일부는 정부를 일부는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사이비 단체를 거침없이 비난했고, 나머지는 숨죽여 공포에 떨고 있었다. 나는 얼추 후자 쪽에 속했다. 그 시기의 나는 속은 걱정 없었지만 겉으로는 호들갑을 떨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겉은 평온한 듯 보였지만 속이 시끄럽기도 했다.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했지만 어느 쪽이든 매일 아침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또 사망자는 없는지 찾아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늘어나는 확진자를 확인하며 매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매 순간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있으니 우리는 늘 죽음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인지하고 있는 것과 매 순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염연히 다르다. 우리가 요즘 이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도 그 죽음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확인한다는 것, 그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죽음의 사실은 누구에게도 절대 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불편한 감정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은 곧 분노로 표출됐다. 그래서 각자 그 감정을 해소할 대상을 찾아 노골적인 비난과 비판, 때로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소했다. 나는 이렇게 혼란으로 휩쌓여 있는 시기에 유난히 잊히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2월 19일 첫 사망자였던 65세 대남병원 환자이다.


2월 19일 사망한 첫 한국인 코로나 사망자에게 사람들은 이목을 집중했다. 확진자만 늘고 있던 상황에 첫 사망자 발생은 두려움을 배가시켰다. 그의 죽음은 환영받지 못했다. 당신의 죽음 탓에 우리의 불안감이 배가 됐다는 괜한 심술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에게도 어떠한 감정을 남기지 못한 죽음이었다.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현실보단, 코로나19로 인해 첫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첫 사망자는 무연고자로, 10살 때부터 조현병 치료를 받았고 20년 넘게 대남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또 그는 과거부터 만성 폐 질환을 앓고 있었고 감염 이후 폐렴이 악화돼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할 당시 그의 몸무게는 42kg였다. 그의 장례절차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마 바로 화장하고 장례식 없이 장례를 치렀을 것이다. 존재 했지만 존재를 인정 받지 못했던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누군가 슬퍼하긴 한 걸까?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로 누군가 눈물을 흘리긴 했을까? 난 유난히 그의 죽음에 슬픔을 느꼈다.


탓을 하자면 조금이라도 죄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며 그들을 질타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을 테니깐. 하지만 때로는 제어할 수 없고, 제어되지도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일이나, 또는 평소에도 제어하기 힘든 대남병원의 환자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도 이와 같은 상황에 포함된다. 몇몇의 사람들은 이런 통제되지 않는 상황 속에 죽음을 맞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려 하는 일보단, 특정할 수 없는 원인으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찌할 수 있는 일' 말이다.


Pink peach trees, Van Gogh, 30 March 1888 / Kröller-Müller Museum 소장


1888년 2월, 반 고흐는 사촌 처남인 안톤 마우베(Anton Mauve)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의 나이는 49세였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고 알려진다. 그는 반 고흐의 첫 미술 선생이기도 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반 고흐는 그를 기리는 그림을 그려 그의 아내인 엣 마우베(Jet Mauve)에게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참 봄에 핀 과일나무를 연구하고 있었던 그는 핑크 복숭아나무를 완성해 그녀에게 보낸다. 그림에는 'Souvenir de Mauve (Memory of Mauve)' 즉, 마우베를 기억하며를 자신의 서명과 함께 써넣었다. 오늘 이 그림을 통해 마우베뿐 아니라 힘든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여러 사람을 기리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도 기억되지 못할 사람들과 그들의 죽음을 위해서이다.


아직까지도 바이러스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단계까지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몇 개월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니 단기간 안에 끝날 문제는 아닌 듯 보인다. 지금 이 악재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상황 속에서 우린 부정적인 것을 계속 찾기보단 긍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상황이 악화되고 사회가 더 혼란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타인을 신경 쓰기보단 나 자신의 안위만을 더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 응원하기를, 아픈 상황 속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더 생각하기를, 그리고 이유도 모르고 죽어갈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짧은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 편안한 시간을 주기를, 또 고흐의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we take death to go to a star.
우리는 별로 가기 위해 죽음을 맞는다.
- Vincent Van gogh
매거진의 이전글 고흐의 향기가 보일 때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