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 긴긴밤
2022년 1월 11일(화) 2022년 해가 바뀌고 처음 개최된 BnJ의 제7회 독서모임.
2021년의 마지막 책을, 2022년의 시작과 함께 나눠봤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이 책 읽은 지 며칠이 지나서 감동이 약간 사라졌어요.
B: 울었어?
J: 울진 않았어요. 언니 울었어요?
B: 안 울었어. 근데 눈물이 날 법한 책이어서 물어봤어. 나는 이 책을 주변에 읽으라고 많이 권했는데, 주면서 혹시 모르니까 '손수건'하고 '따뜻한 차 한 잔' 옆에 두고 읽으라고 얘기했거든.
J: 나도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고 싶었어요. 종종 주변에 책 선물을 주는데, 한동안 우리가 읽었던 '밤에 우리 영혼을'을 많이 선물했거든요. (우리 둘 다 엔딩을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은 책이니깐) 그런데 앞으로 당분간은 '긴긴밤'을 선물로 많이 줄 것 같아요.
B: 나는 이미 선배한테 선물했어. 그 선배가 전부터 동화 쓰고 싶다고 했었거든. 왠지 이 책이 선배랑 분위기도 잘 맞았고 선배의 감수성이라면 충분히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물했어.
J: '크리스마스 피그'가 크리스마스 주간의 책이었고, '긴긴밤'은 12월 마지막 주의 책이었잖아요. 그 두 책 모두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아요.
B: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또 밤이 긴 '동지' 즈음에 책을 읽었잖아. 그 긴 밤을 사색하면서 보낼 수 있게 만든 책이었어. 이 책이 어린이 문학상 대상이라는데, 어린이 문학상이 아니라 그냥 문학상도 충분히 받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
J: 그때 우리가 책 정할 때 여러 책을 많이 찾아봤잖아요. 그때 이게 소설가들이 가장 많이 추천했던 책이었어요.
B: 평이 좋은 책 중에 기대에 부응하는 이 사실 별로 없는데 이 책은 추천서가 주는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었어.
J: 맞아요.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누가 읽어도 좋은 책인 것 같아요.
B: 어느 파트가 제일 좋았어?
J: 나 코끼리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맨 앞에 코끼리 나오는 부분 좋았어요. 나는 코끼리가 동물들 사이에 약간 신적인 존재라고 믿는 편이거든요.
B: 신적인 존재까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성이 남다른 동물이지. 옛날에 어떤 수의사가 라디오에 나왔는데, "다시 태어나면 어떤 동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코끼리로 태어나고 싶다고 대답했거든. 코끼리는 실제로 약한 동물을 무리에서 도태시키지 않고 이끌어준대, 약자한테 약하고 강자한테 강하게 하는 것이 코끼리의 성향이라고 말하더라고.
J: 맞아요. 그리고 이 책 초반에도 코끼리가 그런 역할로 나오잖아요. 그 장면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코끼리가 예쁘게 표현돼서 기억에 남았어요.
그 외에는 좀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 있는데, 주인공 노든이 동물원에 있다가 같은 우리에 있는 코뿔소 하고 탈출을 계획하잖아요. 근데 노든이 아파서 잠시 우리를 벗어난 사이에 밀렵꾼들한테 죽임을 당하는데, 전혀 예상을 못했던 장면이라 충격적이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라고 해야 되나?
B: 나는 사실 동물원에서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거든, 그래서 다른 동물들과 이야기하고 긴 밤을 보내면서 치유하는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겠다가 전개가 급 달라져서 나도 좀 놀라기는 했어. 그런데 더 놀라운 전개는 전쟁을 계기로 탈출하게 된다는 거였어..
J: 만약에 이 스토리가 노든이 스스로 탈출하는 것이었다면 얼마 못 가서 바로 잡혔을 것 같아요.
B: 그리고 첫 장면에 노든이 코끼리 마을에서 나갈지 남을지를 스스로 정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근데 그걸 인간이 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자의에 의해서 정하는 것이라고 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어. 결국에 노든은 나가기로 결정을 하지. 나가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내를 만나고 애를 낳고 동시에 끊임없는 시련들이 닥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주인공한테 삶의 중심을 잡게 해 주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겠구나 생각도 들었지. 근데 가족들 죽는 부분 너무 슬펐어. '노든은 아내의 코에 자신의 코를 맞댔다. 노든의 코에 피가 묻었다.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왔다.'
J: 그래서 난 이 책 읽고 동물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래도 종종 가족들한테 동물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거든요. 그때마다 엄마나 언니는 그럼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볼 수 없지 않냐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인간이 꼭 살아있는 동물을 봐야만 하는 건가? 우리가 살아있는 동물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꼭 필요할까요?
B: 나는 오히려 반대 생각이 들었어. 나도 전에는 너처럼 동물원이 꼭 필요한가? 동물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동물원이나 보호소 같이 인간이 만든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실제로 그 울타리 밖은 정글이잖아. 약육강식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나쁜 인간들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너무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으니깐. 그 모든 걸 다 감내해야 하는데 자연은 그들을 품어줄 만큼 풍성하지 않고... 그렇다면 울타리 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 물론 그게 어떤 울타리인가가 중요하겠지만.
J: 이 책이 '코뿔소 노든의 말년은 극진한 대우를 받는 왕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 생각이고, 노든 자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붙어 있는 인간들과 그의 몸을 찔러 대는 바늘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이걸 보고 확실히 동물원에 있으면 아프면 수의사가 치료해 주고, 동물에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렇게 해서 수명이 원래 사는 것보다 더 길게 살 수도 있고 그렇겠지만, 과연 동물들이 원하는 삶이 이런 걸까? 저는 이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B: 그래서 노든도 자기 삶을 찾으러 나갔다가 많은 일을 겪게 된 거지.
J: 맞아요. 물론 동물원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만 살면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동물들이 진짜 원하는 삶은 아닐 것 같아요.
B: 나는 '긴긴밤' 읽으면서 울지는 않았는데, 이 책 얘기를 하려고 하면 눈물이 나.
J: 그런 책인 것 같긴 해요. 보면서 엄청 많은 것들을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이 내용만으로 너무 좋았어요. 펭귄이 느끼고 있을 감정이나, 주인공 코뿔소가 느끼고 있을 감정이나 이런 게 너무 잘 전달이 됐고 그냥 그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B: 나는 여러 면에서 깊게 생각해봄직한 책이라고 생각했었어. 꿈과 희망이나 구체적인 직업이나 이런 거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인간 정체성에 대한 담론은 제시했다고 보거든. 노든이 처음에 코끼리 무리에 갔을 때 자기가 코끼리인 줄 알잖아. 그래서 너는 이미 훌륭한 코끼리가 됐으니 이제 코뿔소의 삶을 살아보란 이야기를 듣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나중에 아기 펭귄이 태어났을 때도 그 펭귄이 자기가 노든을 닮았다며 코뿔소라고 이야기하잖아. 이런 장면을 읽으면서 나도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었어.
J: 인간은 너무 잔인해!
B: 나는 같은 인간으로서 좀 반성하게 됐어. 하지만 이 책이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나 거기서 엿보이는 인간의 잔인함,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진 않아.
J: 나도 그런 생각이 계속 들지는 않았는데 중간중간에 문득 '그래... 동물들도 감정이 있을 텐데...' 이런 생각들이 좀 들었고, 또 그림을 마음이 안 좋게 그려놨어요! 너무 행복하고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서 마음이 더 안 좋았어요.
B: ㅎㅎ 삽화가 진짜 찰떡이었지? 모든 삽화가 다 좋았는데, 특히 마지막에 텍스트가 끝나고 이미지로만 연출한 부분이 진짜 좋았어. 펭귄이 떠나고 그 뒤의 모습들. 마치 엔딩 크레딧처럼 느껴졌어.
J: 맞아요. 혹시 그럼 단점은 없었어요?
B: 너무 짧아. 짧아서 좋기도 했는데 나는 이 책이 되게 좋았거든. 작년에 읽는 책 중에 제일 좋았어. 그래서 좀 더 빠져 있고 싶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지.
J: 나도 단점은 없어요. 그냥 마지막에 코뿔소와 펭귄이 함께 바다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코뿔소의 인생이 너무 슬퍼.
B: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라는 영화를 봤거든. 혐오 동물로만 비치는 개체들이 동물원 최고의 인기 동물인 코알라와 함께 아웃백으로 떠나는 내용이야. 그 영화를 돈돈이랑 재미있게 봤는데, 자의 혹은 타의로 울타리 밖을 나간다는 설정이 비슷해서, 책 보면서 살짝 생각났었어.
J: 그럼, 언니는 함께 보면 좋을 작품으로 '우리 함께 아웃백으로'를 추천하는 거예요?
B: 동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선 같이 봐도 좋을 법하긴 한데, 나는 그보다 '밤에 우리 영혼은'을 추천하고 싶었어.
J: 왜요?
B: 둘 다 '밤'이라는 시간대가 가지는 특별한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고, 서로 연관성이 거의 없는 타인이 긴 밤을 함께 보내며 대화를 통해 정신적인 교감을 한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졌거든. 너는 어떤 작품을 추천하고 싶어?
J: 나는 '바다로 간 코끼리 무모'요. 동물들이 어떤 꿈을 가지고 향해간다는 내용이 비슷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았고, 둘 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어른동화라 추천했어요. 무모도 읽고 나면 '긴긴밤'처럼 마음 한켠이 따뜻해지거든요.
B: 9.8
J: 9.0
B: 켄트 하루프-밤에 우리 영혼은 : 또 다른 밤의 감수성을 느껴보길!
J: 노미 바움가르틀-바다로 간 코끼리 무모 : 이 책 또한 꿈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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