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나는 정말 오래전부터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다. 수학적 용어나 계산법을 틀리는 일이 나에겐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초등학생보다 계산을 못한다 해도 나의 자존심은 꿈쩍도 않는다. 왜냐면 나는 그것에 애정이 없는 사람이기에.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에는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 #02
하지만 국어는, 문학은, 글쓰기 수업은 달랐다. 늘 앞에 나서 말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잘 쓰고 칭찬받고 싶었다. 잘 쓰는 사람 이란 소리가 항상 듣고 싶었다. 너 참 글을 잘 쓰는 구나. 칭찬이 달았다.
아무 말도 써지지 않는 날에는 마음이 아팠다. 마음을 쿵 때리는 글을 읽을 때, 그게 심지어 나 역시 해본 생각일 때. 왜 나는 이렇게 못 쓰지? 자책하고 좌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어설프게나마 그것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 잘 쓰는 학생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 덕에 생활기록부부터 이력서까지 취미란에는 항상 글쓰기가 채워져 있었다.
아마 주인공 리사(매기 질렌할)도 그랬을 것이다. 영화에 그녀의 과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도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잘한다 잘한다 소리 깨나 들으며 자랐을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엄마로 아내로 또 선생님으로 꾸려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꿈같은 건 묻어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엇무엇을 잘하는 나는 어디엔가 버려둔 채 하루를 그저 살아 내다가 시 수업을 듣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어설픈 재능이란 건 한계가 있어서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녀가 쓴 시는 인정받지 못했다. 리사는 마음 한구석이 휑했을거다. 케케묵은 꿈같은 거 그냥 놓아버릴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은 그런 게 아니다.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미련하게도 계속 생각나고 포기 못하겠는 거지.
그래서 나는 그녀가 자신의 학생 지미 (파커 세바크)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했을 때 느꼈을 감정 앞에 함께 무너졌다. 다섯 살짜리 꼬마의 입에서 나온 문장들 앞에 느꼈을 환희와 좌절감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미가 받은 박수갈채와 찬사. 그리고 그걸 바로 뒤에서 바라보는 리사. 저 박수를 왜 난 받을 수 없을까. 리사는 무너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지미에게 집착하는 그녀의 모습은 섬뜩하지만 나는 그렇게 변질되어버린 꿈에 대한 갈증이 안타깝기만 했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사람들이 어설픈 재능 앞에 고통받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무언가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꿈에 대한 목마름과 처절함이 있다면 모두에게 공평하게 '한 번쯤은'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그게 기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스스로 키워야 하겠지만.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서 나에게는 기회조차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 기회가 안 왔고 나는 그것이 오면 잽싸게 알아보고 잡기 위해 오늘도 준비 중인 게 덜 억울하기 때문이다. 그런 희망이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게 아직도 내가 글을 쓰도록 만드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영화는 끝났지만 나는 리사가 계속해서 시를 써 내려갔으면 하고 바란다. 지미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게 해 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그녀를 시인이라 생각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모를 테니까. 바라던 시인의 모습이 되지 못하더라도 타고난 재능에게는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회가 아직 오지 않은 거라고 믿고 하루만 더, 진짜로 정말 딱 하루 만 더 버텨봤으면. 리사도 지미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