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어나더 컨트리 (Another Country)
브런치 무비패스 #03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에는 약한 스포일러와 대사 한 줄이 포함되어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연극의 시대적 배경은 이렇다. 1930년대와 영국. 그리고 무대가 주는 공간적 이미지는 도서관과 기숙사다. 키를 훌쩍 넘은 높은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영어로 된 두꺼운 책들. 앞에 놓여있는 갈색의 책상과 의자들. 등장인물은? 아주아주 비싼 원단으로 만든 검정 재킷과 회색 바지의 교복을 입은 사내아이들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윤기가 차르르 흐른다. 맞다. 이곳은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있는 영국의 '명문 공립학교'다.
영국의 상류층 학교.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나는 이 생각부터 떠올랐다. 국가적 배경과 시대적 이념이 나하고는 조금 상관없는 이야기구나. 그사세네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내가 이 극을 보고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 나한테 마르크스고 자본론이고 계급사회고 다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 아닌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 같긴 한데, 아유 그런 거 잊어버린 지가 언젠데.
그러나 몰입은 순식간에 시작됐다. 배우들의 발성과 발음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하물며 광고도 캐스팅이 중요하지만 영어로 된 명칭들을 나열해줄 자막도 없고, NG가 나면 다시 찍을 수도 없는 연극무대에서는 배우들의 역할이 전부 다 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연극 <발음 맛집>이네.
1930년대의 영국 학생들. 그 생소한 이름이 귀에 들어온다. 구준표나 왕대륙 같은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이름이 아닌데도 아주 잘 들린다. 그러니까 저기 저 까불까불한 녀석 이름이 '가이 베넷'이라고? 어떤 집단에 한 명씩 있는 자유롭고 긍정적인 영혼. 규칙을 어기고 눈에 튀는 사고를 치는데도 밉지 않고 어쩐지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아 그러니까 네가 이야기의 주인공이구나 가이.
그리고 저기 저 선비처럼 똑 부러진 청년은 '토미 저드' 랬지. 저학년들에게 내리는 체벌을 혐오하고 학교 내의 규칙들이 시답잖은 걸 아는 녀석. 자신이 속해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고치고 싶어 하는. 결코 부러지지 않을 자신만의 완고한 신념을 가진 학생.
그런데 말입니다…그런 완고함은 반드시 누군가는 부러뜨리고 싶어 할 텐데. 생각하는 찰나 등장하는 선도부. '파울러'. 이미 선도부라는 것에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 같은 그의 사상. 학교의 기강을 운운하는 파울러에게 가이와 토미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얼마나 눈엣가시인지는 안 봐도 유튜브다.
그리고 대형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수식어를 다 적어둘 수는 없지만 바클레이, 데비니쉬, 멘지스, 샌더슨, 델러헤이, 워튼, 그리고 하코트. 이런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극을 함께 이끌어 간다. 각각의 인물이 가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름이 들리기 때문에 극을 이해하는데 외국 이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점이 정말 좋았다. 내가 읽다가 포기한 몇 권의 외국 소설책들을 떠올리면, 그 길고 낯선 이름 때문에 읽다가 자꾸만 앞 페이지로 돌아가 '뭐지 얘가 걔였나? 아 아니구나' 하다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아래 단락부터는 극에 나온 대사 한 줄이 나옵니다.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곳곳에 묵직한 펀치가 있고 나는 그 대사들에 여러 번 맞았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계급으로 나누어진 학생들은
자신의 신념을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저버려야 했고, 흔들리던 나의 정체성을 계속 찾아갔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포기한 대가만큼 얻어내기를 원했다. 힘들어도 가면을 쓰고 억지로 웃었고 혹은 울었다. 그들의 행동이 영국/교복/1930년대만 빼면 지금의 나와 다른 게 없지 않나.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어. 그건 무언가에게 지배 당하고 있기 때문이야.
연극이 진행되는 100분을 통틀어 나에게 가장 무거운 한 방은 이거였다. 한때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길게 생각 할 것도 없이 돈 · 시간 같은 것들이란 결과를 얻었다. 과거에도 현재도 돈이 없어서 죽고 싶었고 시간이 없어 죽고 싶었다. 저 대사처럼 나는 그것들로부터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지배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 연극 '어나더 컨트리'의 학생들도 그걸 원한다. 이것도 하지 말고 이것도 하지 마. 이걸 왜 해 너 미쳤어? 행동과 생각을 억압받는 상황에서 (그것도 폐쇄적인 기숙사 학교) 그들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무언가를 꿈꾼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무거운 주제 같지만 객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도 참 많이 웃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고 위트있게 풀어낸 연출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막 웃다가 어느 순간 뒤통수 한 대 퍽 맞은 듯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저들이나 나의 처지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그럴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서늘한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어나더 컨트리 (Another Country)>라는 제목을 곱씹었다. 정말 저 아이들은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를 지배하는 것들로부터 한 뼘 멀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