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동료의 생일 선물을 고르는 데 일주일이 걸렸고, 절친한 벗의 결혼식 축사 원고를 완성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틈만 나면 눈알을 굴리고 턱을 괴며 고민했던 두 에피소드를 끝내자마자 든 생각은 마음을 쓰는 일에 가장 필요한 연료는 역시 시간이라는 거다.
B는 선물을 받고서 무척이나 좋아해 줬다. 어쩜 이렇게 자신이 꼭 필요했던 것들만 골랐느냐고 놀랐다. 매일 보는 사이도 아니고, 전 직장 동료인 B가 필요했던 물건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다 저 시간 때문이다. B가 뭐가 필요할지 틈만 나면 생각했으니까. 과거의 대화들을 지속적으로 곱씹으면서.
예전 같았으면 스스로에게 '오 눈썰미가 좋아졌네' 하고 뿌듯해만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간을 썼기 때문에 쓴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는 걸. 나의 일주일 치의 연료가 B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씽씽 달려준 거다.
좋아하는 B의 모습을 보며 너무 기뻤다. 시간이라는 연료는 다루기가 까다로워 많이 쓴다고 무조건 많이 나가는 게 아니라서.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처럼 잘못 썼다가는 어딘가 고장이 나버린다. 불과 얼마 전 내가 딱 그렇게 고장이 났었다. 잘못 써버린 시간들을 마음에서 제거하느라 일상이 온통 엉망이었네.
엉망인 순간에도 깨달은 건 있었다. 잘 못 써버린 시간은 신이 아닌 이상 되돌릴 수 없으니 고장 난 김에 잠깐 비상등 키고 멈추는 게 낫다는 걸.
별짓을 해도 꼼짝 않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레 조금씩 나아간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다 저놈의 시간이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