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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Apr 23. 2020

개고생은 아무나 하나

  


  누구에게나 절대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서 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 내딛는 도약의 순간이죠. 보폭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냥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로 벅찬 것. 바로 무언가에 도전하는 순간입니다.


일상 속 도전은 자전거를 배운다거나, 면허를 딴다거나, 안 해본 운동을 시작하고,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어보고, 혼자서 길을 찾아보는 것들이죠. 작던 크던 대부분의 도전은 고민과 공포에서 시작해 기쁨과 성취감 그리고 평생에 남을 진한 경험치를 남기고는 합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죠. 혼자서 밥 먹는 일이 한 발 자전거를 타는 일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대학에 가고 재수를 결심할 때, 회사로 출근했던 저의 스무 살의 하루들은 도전 투성이었어요. 첫 면접 첫 출근 첫 회식 첫 월급 모든 게 안 올라가 본 계단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계단씩 딛다가 1년 반쯤 지났을까요? 이 계단 말고 다른 게 오르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때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장 큰 뜀박질을 하려 했던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이전의 것들과는 달랐어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거든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뭔가 큰 도전을 앞두고 고민할 때면 똑같이 심장이 빠르게 뛴답니다. 그건 저만 아는 박자예요.


그 순간은 일종의 '도움닫기' 입니다. 도움닫기할때 숨차고 심장 막 방방 뛰고 그러잖아요. 잘 뛸 수 있을지 없을지 엄청 떨리면서.


사무실에서 야간대학교를 검색해보고 갈 수 있는 학교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학사학위가 너무 갖고 싶었거든요. 대학교에 못 갈 이유는 정말 많은데 가고 싶은 이유 한 개가 자꾸 이기는 거예요.


그래서 나름의 절충안을 찾은 게 야간대학교였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고생길은 눈앞에 보이지 않았고 그땐 방법을 찾았다는 게 일단 너무 기뻤어요.



  도움닫기를 마치고 점프를 시작하자 이런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 (특히 시험이있을 때)과 야근이 겹칠까 조마조마했던 날이 허다했고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 과제를 하느라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게 됐죠. 퇴근하고는 학교까지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뛰었어요 출석 체크 놓치면 안 되니까. 쉬는 시간에는 샌드위치나 김밥을 허겁지겁 욱여넣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부터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수업이 있어 회식에 빠지는 날이면 눈치를 봤고 주말에는 조별 과제를 하러 조원들을 만났어요.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회의자료를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커피 4잔을 마셔도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었죠. 4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더니 어떻게 지나긴 했습니다. 


야근이 많던 회사에서 더는 안 될 것 같아서 3학년 때는 결국 이직을 했습니다. 안정적인 퇴근이 생기자 생활은 조금 나아졌죠. 졸업장 받던 날 진짜 너무 행복했어요. 인생 첫 도전의 맛은 학사모와 함께 사진으로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퇴사를 했습니다. 이후에는 진짜 하고 싶었던 직무에 대졸자로써 발끝을 담글 수 있게 되었죠. 회사 하나만 다녀도 된다는 게 그렇게도 홀가분했습니다. 그냥 출근하고 퇴근만 하면 되는 평범한 일상이 소중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첫 번째 고민과 도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고생을 선택했던 게 항상 자랑스럽고 당당해요. 개고생 이거 진짜 돈 주고도 못 사는 건데.


누군가는 저의 주경야독 에피소드를 듣고 '와 되게 고생을 사서 하셨네요'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근데 덕분에 이 주제를 보자마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뭔가를 시작하고 도전하기에 적절한 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언제고 무릎을 굽혔다 뛰었던 사람, 도전했던 사람들의 후기만 남는 거죠.


앞으로도 저는 자주 망설이긴 하겠지만 뛰어야 할 순간이 오면 일단 뛸 계획입니다. 지나고 보니 개고생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었어요. 용감한 사람들의 선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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