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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Aug 17. 2018

어디까지 '그루밍' 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고양이는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그루밍을 하며 보낸다. 그루밍(grooming)이란 고양이가 자신의 털을 단장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까끌까끌한 혀로 온몸 구석을 침을 묻혀 핥는 것을 시작으로 이빨을 사용해 엉킨 털을 쭉쭉 잡아당기면서 고르게 정리한다. 마치 나의 엉킨 머리카락을 빗질하며 푸는 모습 같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그루밍을 하는 이유는 열을 식혀주기도하고 심신 안정을 위해서이기도하고 혹은 몸이 아파서 그렇기도 하다. 때마다 다르고 이유는 많다. 평상시에 관찰 해두었다가 특정 부위만 핥지는 않는지 횟수가 평소랑 다르지는 않은지 잘 지켜봐야 한다. 온종일 얼마나 자주 몸을 핥는지 감이 안 온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들이 그루밍을 안 한다는 건 병원에 당장 가봐도 좋다는 신호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쩐지 웃음이 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혀가 안 닿는 곳이 없다. 딱 한군데 안 닿는 사각지대가 있긴 하다. 흔히 뒷덜미라 부르는 그곳. 목덜미 아주 극히 일부분만 혀가 닿지 않아서 심장사상충 약을 그 부위에 발라주고는 한다. 그 한 부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혀로 온몸을 샤워할 수 있다. 혀성비 갑이다. 만약에 나도 내 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갑자기 목이 탄다. 그래서 우리 고양이가 물을 자주 마시는 거였나.




현란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내 목이랑 턱이 다 아프다. 어림잡아 고개를 움직이는 횟수가 600회는 되는 것 같다. 턱을 두 개로 만들며 목 아래까지 꼼꼼하게 씻는다. 혀를 죽 빼서 목까지 닦는 것을 흉내 내보면 새삼 양손을 사용해서 샤워할 수 있음에 신선하게 감사해진다. 만약 고양이처럼 신체 부위 한 곳만을 사용해서 하는 게 샤워였다면 사람들은 팔이 빠졌어도 몇 번은 빠졌을 거다.


샤워 이야기가 나와 말인데 올여름 미친 날씨 덕분에 집에 있을 때 샤워를 상당히 자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끼얹으며 번번이 다양한 생각을 했다. 가만 보니 나는 유독 머리를 감을 때 잡생각들이 함께 감긴다.


샴푸를 짜서 거품을 내고 머리를 감는 과정에서 종일 힘들었던 일, 내일 힘들 일, 1년 뒤, 10년 뒤 별 생각들을 같이 문지른다. 사소하게는 내일 뭐 입지부터 시작해서 과도하게는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까지 이어진다. 하얀 거품이 커지는 만큼 잡념은 커졌다가 그 무게만큼 가볍게 흩어진다.


비슷한 상황은 또 있다. 바로 손톱을 깎고 매니큐어를 바를 때다. 손톱에 색을 칠하며 잡생각도 함께 덧칠해본다. 단순하게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가령 친구를 기다린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할 때도 똑같이 가만히 있는데 이 상황들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는다. 오 뭐야 나는 내 몸을 단장할 때 생각도 함께 단장하는 거였네. 생각을 그루밍하는 거였다. 진정한 이너뷰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겉모습 단장하면서 내면까지 단장하고 난리 났네.


만약 고양이도 그루밍 할 때 내면도 함께 단장하는 거였다면 왜 그렇게 그들이 영리한지,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이 표현하는 영악한 동물인지 알 것도 같다. 평생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끊임없는 자아 성찰의 연속 아니었을까. 진정 이너뷰티의 원조다. 사실 이것도 최근에 머리 감다가 떠오른 생각이다. 앞으로도 하루에 한 번 나의 생각 그루밍은 계속 될 예정이다. 쓸데없는 생각도 엉킨부분을 잘 정리해서 단장하다 보면 언젠간 쓸모 있는 생각이 되지 않을까.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활용 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은 털 같은 생각은 뽑아서 버리고 같은 방향으로 잘 다듬는다면 내 생각도 고양이 털처럼 윤기가 흘러 계속 들여다보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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