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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Aug 06. 2018

고양이 생일파티가 내게 남긴 것


근래에 우리 고양이 2살 생일잔치를 해주었다. 잔치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고 내가 처음 고양이를 데려온 곳에서 그때 태어났다고 추정해주기에 달력에 잘 적어놓았다가 해마다 이벤트처럼 챙겨주기를 이번이 두 번째. 과정을 써보자면 이러하다.  


(1) 좋아하는 캔 사료 중에 수분이 가장 적은 것을 준비한다.

(2) 캔을 까서 그 위에 짜 먹는 간식(츄르)으로 장식하고 각종 간식을 얹어 케이크처럼 꾸민다.

(3) 작년에 다이소에서 1~10까지 써진 숫자 초를 사두었다. 서랍에서 꺼낸다. 

(4) 집에 있는 포장지를 고깔 모양으로 자른다. 

(5) 역시 집에 있는 고무줄을 포장지에 구멍을 내어 넣고 묶는다.

(6) 고양이 머리 위에 씌우고 초에 불을 켠다.

(7) 배경이 허전해 한 달 전 내 생일에 선물 받은 가렌드로 집을 장식한다.

(8) 알아들을진 모르겠으나 덕담을 해주곤 사진을 찍는다. 



소요시간은 대략 20분 미만이고 나는 이 시대의 최고의 포토그래퍼로 빙의해서 셔터를 누른다. 1년 전에도 과정은 같았다. 그리고 그 사진을 내 개인 SNS계정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유명 SNS 페이지에도 여러 곳 제보했었다. 업로드 된 게시물 반응을 보니 의외로 고깔모자를 쓰고 가만히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 그 반응을 보고 우리 고양이가 다른 냥이들에 비해 참을성이 많은 순한 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SNS를 하지 않는 주변 지인들을 만나면 사진을 종종 보여주고는 한다. 대부분은 일단 신기해한다. 그리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너무 귀여워하고 즐거워하고 박수를 치며 나보다 더 좋아 해준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케이크를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이고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성급 셰프에 빙의해서 또 신나게 답변을 해주곤 한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파티임은 맞긴 맞다. 우리 고양이보다 내가 더 신나는 건 사실이니까. 


재주가 늘어나는 기분이라 뿌듯



올해 들었던 반응 중에 가장 기분이 좋았던 말은 "우와. 주니(고양이 이름) 정말 사랑받고 있네요"였다. 정말 따뜻해지는 말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씨에 정말 감사했다. 사실 우리 고양이가 저 케이크를 준다고 해서 '집사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흑흑' 라고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평소에 소량으로 급여해주는 간식을 왕창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날이니까 '와 이게 무슨 날이래!' 정도는 생각 해주겠지. 새로운 장난감도 그날 꺼내어주니까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즐거워는 해주겠지…그렇게 바라기는 했었다.


고양이 생일파티를 해주는 이유가 사진찍는게 좋아서, 남기고 싶어서, 자랑하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우스갯소리로 관종이라서도 맞긴 맞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내 반려동물을 사랑해서였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고마웠고 그 사람이 달리 보였다. 저렇게 속 깊은 사람이었다니…당사자는 아마 몰랐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선 하루 종일 기분이 방방 떠 있었다.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이 이렇게 세다. 이와 반대로 한결같이 갸우뚱해지는 반응도 있긴 하다. 바로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네'라는 반응.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에 악의가 없을 순 있어도 듣자마자 눈은 커진다. 하하 그러게요 웃어넘기지만 돌아서면 갸우뚱이다. 왜 굳이 저런 표현을 썼지. 기분이 막 나쁜 건 아닌데 썩 좋은 것도 아니다. 이건 내가 예민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동물한테 별 걸 다해준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하는 느낌이랄까. 상팔자를 사전에 넣고 검색해보면 뜻이 이렇게 나온다. 썩 좋은 팔자.

한자로 <위 상>자이다. 하이 클라스라고 하이 포춘이라고…. 무자식 상팔자. 개 팔자가 상팔자다. 이곳저곳에서 쓰고 있다. 책에서도 쓰고 기사에서도 종종 쓴다. 그냥 단어이긴 하다. 팔자 자체가 좋다는 표현이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휴양지 놀러가서 선베드에 누워 와 내 팔자 늘어졌네 진짜 너무좋네. 셀프로 하는 말인걸.




아직도 이 미스테리한 감정이 뭔지 설명을 못 하겠다. 단순히 내가 예민해서 말을 꼬아서 들은 건가 싶어서 친한 집사에게 물어봤더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쁨에 같이 격분해줬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냥 그렇다고 했다. 자기도 평소에 종종 쓰는 말이라면서. 근데 이 친구가 나에게 그런 표현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이 친구가 썼다고 상상을 해봤는데 기분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고양이 생일파티요? 내가 겪은 상황 앞 문장에 이미 비아냥거림이 묻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못 들어서 뿔이 난 철없는 답정너일까. 아니면 내게 최초로 그 말을 썼던 사람 자체가 싫어서 생긴 선입견인가. 2년째 하는 고양이 생일파티가 내게 남긴 숙제다. 아마 우리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혀를 끌끌 차며 그냥 잠이나 자라고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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