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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Jan 04. 2022

서른 둘, 대리가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첫 번째 월요일

출근을 했더니 자리에 새 사원증이 놓여있었다.


내 이름 옆에 

마케팅팀 대리라고 두 글자가 바뀐 

사원증을 가방에 넣으며

아무렇지 않게 컴퓨터를 켰다.


지난주 월요일과 다름없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들어

자리에 다시 앉았고 메일을 열었다. 

사내 게시판에는 인사발령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내 이름 옆에 붉은 글씨로 

직급 승진이라고 붙어있었고

마스크 속 감춰진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2022년 나는 드디어 대리가 되었다.


대리 앞에 드디어를 붙이고 싶은 이유는 

이렇게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마셔온 하루가 쌓여

벌써 11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2010년 첫 번째 회사에서 나는 

20살, 21살, 22살이 돼가며  줄곧 무슨팀 막내였다. 

25살, 26살, 27살의 대졸자 신입 공채들이 

들어와서는 나에게 선배님 선배님 소리를 하자 


어느 날엔가 아침 회의시간에

우리팀 과장님이 

나를 콕 집어 누구씨한테 

선배 소리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그날 아침 회의실 공기를 기억한다.

나와 친한 이들이 불편해하며 나의 눈치를 봤고

과장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나를 봤다

신입사원과 인턴들의 제각각인 표정도 있었다.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뜨거웠던 

그 기분을 

사실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지난주에, 지난달에, 지지난달에 입사한 

그들과 다를 바 없었고

심지어는 3년 먼저 다녔으니 

더 빨리, 더 많이, 더 익숙하게 잘 해냈음에도 

그 순간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빨개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태연한 척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마스크도 없었네 참.


그날 집에 와서 조금 울었고 

그 주 주말을 지나 다음 주쯤엔

대졸자가 되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졸업장을 손에 넣으면

다시는 이런 기분은 느끼지 않겠지 

생각했다.


무모한 열정이라는 

초강력한 무기를 가졌었던 나는 

곧장 서울에 있는 4년제 야간대학교에 합격해 

26살까지 회사와 학교를 함께 다녀버렸다.


4년간의 이야기는 지난 글 

개고생은아무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암튼, 그렇게 26살 대졸자가 되어 

29살까지 언론사에서는 에디터라 불렸다.

6년을 다닌 우리팀 선배도 

편집팀 기자라 불렸기 때문에 

직급이 없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도 못했다. 


새벽도 낮도 밤도 없는 

교대근무에

이렇게 살다는 무슨 병에 

걸리고야 말겠다 싶던 29살 봄에는 

여행사에 들어가 마케터가 되었다.


그때 처음 계장(주임)이라는 

직급을 마주했다.

그날도 조금은 기뻤지만

신기하고 낯선 정도였다.


여행업 마케터 1년 차가 되었을 땐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창궐해 

서울에는 50여 명의 확진자가  

누적 1만 명의 확진자가 생겨나고 있었다.


누구도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

무급휴직의 경계에서 벌벌 떨던 30살의 나는 

비교적 안전한 의식주 업계로 가겠노라 

다짐을 했고 여행업계를 떠났다.


그리고 바로 어제

32살과 함께

나는 마케팅팀 대리가 되었다.


무슨팀 고졸사원 

무슨팀 스무 살짜리 막내 친구에서

11년 만에 대리가 되었다.


고졸이니까 당연하지

야간대나왔으니까 당연하지

에디터에서 마케터로 전향했으니까 당연하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 아니니까 당연하지 

이 시국에 이직했으니까 당연하지 


생각보다 당연하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타인에게 들어도

스스로에게 들어도.


기분이 묘하다.

서른 하나에서 서른둘이 되었을 뿐인데

드디어 교복을 벗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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