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설 연휴를 떠나보냈다. 새벽같이 문을 나서지도 않고 쫓기듯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엄마랑 나 그리고 우리 고양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고양이가 먹을 만큼만 음식을 하고 하기 싫은 건 전통시장에서 사 버렸다.
고요했다. 고요한 연휴는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있다고 딱히 외롭지 않았던 것도 아니니까. 그저 올해는 알맞았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연휴의 잔잔함과 게으름이 좋았다.
작년까지의 나는 연휴가 다가오면 '쓰느라' 바빴다. 에너지를 쓰거나 돈을 쓰거나. 달력 속 색깔이 별 의미 없을 때, 나는 뭔가 소비하고자 기를 쓰고 약속을 잡았다. 빨간 날 일하는 것도 속상한데 몇 안 되는 짧은 휴일에 약속이 없으면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올해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늦잠을 한 바닥 자고 미뤄둔 영화 시리즈를 열심히 보고 서랍 속 USB를 찾아 추억을 깔깔대도 출근이 4일 후였다. 시간 부자였다. 외로움은 나와 상관없는 먼 곳에 있었다. 뭔가 저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찐한 행복이 올라왔다.
1년 전 퇴사를 앞두고 써둔 일기를 꺼내봤다. 교대근무로 지쳐있던 나는 '출퇴근이 명확한 오늘'을 기대했다. 예측은 정확했고 나는 이 일기를 정말로 웃으며 다시 읽게 됐다.
역시 일기 쓰기는 좋은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