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옮긴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 역 안에는 피아노 계단이 있다. 계단을 한 발 한 발 딛고 올라설 때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피아노 소리가 난다. 발걸음에 맞춰 불빛도 번쩍번쩍한다. 여러 명이 밟고 오르내리기 때문에 그 피아노는 매 순간 랜덤한 멜로디를 만든다.
요즘 나는 이 계단을 매일 밟고서 흥얼거리며 출근하는데 맛 들렸는데, 오늘은 재미있는 관찰을 했다. 몸이 반쯤 구겨져있던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함께 쏟아졌고, 카드를 찍고, 계단으로 향하는데, 내 앞에 약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전부 피아노 계단이 아닌 일반 계단 쪽을 향해 몸을 옮기는 것이었다. 피아노 계단은 완전히 텅 비어있었다.
내가 푸학 하고 웃은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 내가 딱 저렇게 일반 계단을 밟고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피아노계단 한 번도 안 밟아봐서 부담스러워서(큭큭), 약간 부끄러워서 (대체 뭐가)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몸을 더 틀어야 올라설 수 있는 일반 계단으로 향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피아노계단을 만든 사람의 의도가 전혀 먹히지 않아서 웃기고 슬퍼서 터졌다. 반대쪽으로 가던 사람들이 혹시 나처럼 부끄러워서 저러나 해서 슬금 또 터졌다.
계단을 한 번이라도 더 밟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 고심했을 누군가의 의도와는 달리 (첫 출근 주간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반 계단을 밟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재미있으라고 더 밟으라고 만든 건데 왜 안 밟아 주나요. 기획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혹시 알게 된다면 무슨 기분일까.
오늘따라 한 명도 없던 피아노 위에 나는 발을 올렸고 첫 멜로디를 찍었다. 내가 솔까지 밟았을 때 누군가 새로운 멜로디를 찍었고 맞춰서 나는 흥얼거렸다. 오늘은 금요일이기도 했고 방금 들은 그 생각이 기획자의 기분을 생각해본 첫 관찰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계속 에디터였어도 그 생각했을까.
달력에 표시해 둔 <새 회사 첫 출근>이 d+25일이 되던 날. 그렇게 나는 편집자에서 기획자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딛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 어떤 기획을 하더라도 아마 피아노계단을 밟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오늘은 잊지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