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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Feb 26. 2019

요가를 배우면서 단단해진 것은



한 창 컴퓨터를 배우고 타자 연습을 시작했을 때 모니터만 보고 두다다 타이핑하는 옆자리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기분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손가락을 보지 않고 이 자판을 다 외워서 치는 건 무슨 기분일까. 아오 나는 고개가 너무너무 아픈데. 나도 고개 좀 들고 싶다. 


갑자기 그때가 왜 생각났냐면 드디어 내가 인생 최초로 발가락을 잡았기 때문이다. 요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딱 그게 생각났다. 모니터만 바라보고 타이핑을 시작했던 첫날이.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던. 


두 다리와 엉덩이를 바닥에 곧게 붙이고 척추를 바로 세운 후에 (무릎을 굽히지 않고) 팔을 주욱 뻗어 검지손가락으로 엄지발가락을 잡는 자세. 적어도 내 또래라면 대부분은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자세. 안 된다고 하면 왜? 하는 자세. 하지만 나는 이게 정말 오래전부터 안 됐다. 


학창시절 체력장이라고 하는 기초체력 테스트 시간에도 그 자세는 있었다. 유연한 친구들은 자를 힘껏 밀어 십몇 센티미터씩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유일하게 우리 반에서 마이너스 기록을 달성했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잊히지도 않는 기억이다.


나는 손으로 밀어야 하는 자 부분까지도 손이 안 닿았다. 거기에 손끝을 가져다 대야 선생님이 '더더더 미세요' 하는데 아예 그것조차 못 잡았다. 허벅지 뒷 근육이 끊어질 것 같았다. 괴성과 함께 측정 불가. 2차시도 3차시도 모두 실패.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한 번도 성공을 못 해봐서 나에게는 일종의 꿈과 같은 자세였다. 요가 선생님은 발가락이 잡히지 않으면 발목이나 심지어는 무릎을 잡아도 된다고 했다. 무조건 척추가 바로 세워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계속 발목 언저리를 잡았다. 


그 반에서 나만 또 그 자세가 안 됐다. 다른 자세들은 조금씩 진전이 있는데 왜 이것만 계속 안 되는 거야. 약간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두 손으로 발을 잡으면 자연스레 고개는 아래로 숙여진다. 하지만 발목을 잡은 나는 고개를 들어 앞 옆 뒷사람들을 바라보며 궁금해했다. 무슨 기분일까 저 자세. 나도 잡고 싶다 내 발가락. 


그런데 4주 차가 되던 어제. 거짓말처럼 그 자세에 성공했다. 진짜 어리둥절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비실비실 새어 나왔던 그 웃음이 또 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광대가 막 올라갔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짱 즐거운 일이구나. 즐겁던 그 순간에 정말 퇴사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나는 25일동안 확실히 행복했다. 


평생 못해볼 줄 알았던 자세에 성공했다. 팔을 쭉 뻗어 드디어 나도 앞으로 나아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 타자 연습을 하던 때가 오버랩 되면서 이제는 확실히 충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신호라고 생각했다. 완충되었다는 신호. 이제 다음 도약을 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건강해진 몸과 멘탈로 건강한 직장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단단해진 것은 근육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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