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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Feb 13. 2019

퇴사를 했더니 매일이 기념일이다



미루던 책장 정리를 끝냈다. 안 읽는 오래된 책을 버리고 새 책으로 채웠다. 방안에 꽃을 화사한 색으로 바꾸고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바다를 보러 가 회를 떠서 소주를 마셨다. 남은 떡국 떡으로 떡볶이를 해 먹고 고양이 화장실을 새것으로 바꿔 줬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조금 놀다 다시 잤다. 별거 아니지만 실은 별거였던 것들, 이것들을 하나둘 하고 나니 퇴사한 지 12일이 지났다. 


이전의 퇴사를 떠올리면 평일에 집에 있는 것,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발목에 묶인 족쇄를 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와 나 진짜 퇴사했구나'라는 감정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짜릿한 자유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엔? 이미 매주 평일에 쉬어봤고 수없이 늦잠도 자봤던 스케줄근무를 탈출한 이번에는 어떨까. 전부터 나는 이게 궁금했었다. 


예상대로 한동안 아무 실감도 나지 않았다. 주마다 하루씩 쉬던 평일 휴무일 같았다. 어쩐지 조금 아쉬웠다. 회사를 안 가는 것도 즐겁지만 자유를 느끼는 것도 짜릿한 일인데…아쉬움도 잠시 며칠 뒤 나는 보란 듯이 짜릿해졌다. 친구들과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단 이야기가 나왔고 근무표를 보고 열심히 머리 굴릴 필요 없이 그래 주말에 가자! 라는 말을 외치던 그날에.


나도 이제 주말여행 (돈 있고 시간 있으면) 막 갈 수 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계속해서 못 하던 것을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 바로 이거야. 나는 이런 걸 원했다. 철커덕. 발에 채워졌던 나사가 하나 더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가장 큰 나사는 퇴근하고도 회사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 이건 사무실을 돌아 나오던 퇴사 당일에 풀렸다. 


퇴사 일주일 차. 어쩌면 지금 최고조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이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싶다. 불안과 걱정이 절친이라 한켠에 스멀스멀 뭔가가 지나가지만 애써 외면중이다. 지금 아니면 오랫동안 못 느낄 자유를 다 누리고 새 출발 하려고 한다. 그래 일단은 행복하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살 것 같다. 지옥 같던 회사를 나오니 매일이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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