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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Jan 25. 2019

월요병은 없지만 불금도 없다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를 그만둘 생각을 하니 여러모로 설렜다. 이제 나도 3개월 뒤 토요일에 뭐할지 예측하고 예매하고 계획할 수 있어. 몇 개월 뒤 결혼한다는 누군가의 청첩장 받고서 근무표 짤 때 이날 쉬게 해달라고 잘 말해볼게라는 걱정 안 해도 돼. 


가장 좋았던 건 고정적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거였다. 월수금 화목토 몇 시에 진행하는 어떤 수업이라도 들을 수 있다니. 대박이야! 


어쩌면 내가 이 회사에서 얻어가는 가장 커다란 것은 이런 소소한 행복함에 감사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걸 배우기 위함이었다면 정말 아깝지 않은 시간이다. 스케줄 근무를 해보기 전에는 절대 못 느꼈을 감정이기에. 


남들이 일 할 때 쉬는 건 정-말 달콤했다. 평일 낮 한가로운 미술관, 주말에 가면 자리 없는 인기 있는 카페, 널널한 은행, 저렴한 비행기 값, 평일을 활용해 볼일을 보며 극강의 장점을 맛봤다. 하지만 조삼모사라는 거 알면서도 매주 주말,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소위 말하는 황금연휴에 일하는 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에겐 딱히 월요병도 없었지만 불금도 없었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한 1장 1단이었다. 어느 쪽이 1퍼센트라도 더 컸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매 순간이 정말 똑같이 달고 썼다. 너무 좋고 너무 싫었다. 


퇴근하고 뭐라도 좀 배우고 싶은데. 특정 요일마다 하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신청할 수가 없었다. 난 이번 주는 화요일에는 쉬고 다음 주는 목요일에 쉬고, 그 다음 주는 수요일에 쉬니까. 그마저도 동료에게 혹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뀔 수도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헬스뿐이었다.


변수에 취약하고 계획 주의자인 성향을 가진 나에게는 이런 하루살이 같은 삶이 분명 힘들었던 것 같다. 업무는 적응했을지 몰라도, 한 주는 두 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 출근하고 한 주는 반백수처럼 느지막이 낮에 일어나 출근하는 리듬 없는 삶은 적응 되지 않았다. 





이번 주는 오늘이 쉬는 날이었다.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찌감치 일어나 요가를 등록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1순위로 수영이나 요가를 배워보고 싶었다. 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를 찾아 수영과 요가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은 요가를 배워보기로 했다. 


왠지 망가질 때로 망가진 멘탈도 같이 복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앉아 있느라 진즉 망가진 허리와 함께. (사실 이건 정신승리고 막상 수영하려니 조금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 오는길. 마침 시간을 보니 출근 시간이었다. 지옥철과 지옥 버스를 참 오랜만에 봤다. 저걸 어떻게 타고 다녔나 싶다. 이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깜깜한 새벽 5시 아니면 쨍쨍한 오후 2시에 출근하느라 저 풍경을 잊고 있었다. 갑자기 아찔했다. 아 맞네 다시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 하는구나 나. 


드라마 미생에 나온 장면처럼 본의 아니게 출근러들과 역주행 방향에 몸을 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난 아직 퇴사도 안 했고 오늘은 그냥 평소와 같은 평일 휴무일인데. 주마다 한 번씩 백수라이프 체험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나 진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역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거꾸로 지나치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봤다. 어깨가 처지고 한숨이 나오려는 데 정신줄 꽉 붙잡았다. 뭐 어때 쫄지마 기죽지 마. 아무렴 어딜가도 독감 확진 받아도 출근하는 회사보다 힘들려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겨 걷는데 역 앞에 토스트 가게가 보였다. 





출근 시간에 파는 길거리 토스트라니, 내가 길거리 토스트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제 먹어봤냐면, 스무 살 때 인생 최초로 밤을 새우고 놀다가 아침에 친구랑 집에 들어가면서 먹어 봤다. 나와 친구에게는 추억에 음식이라 최근까지도 그날을 회상하며 너무 맛있고 웃겼다고 다시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던 일종의 소울푸드다. 


토스트는 2천 5백 원이었고 마침 지갑에는 현금이 3천 5백 원 들어있었다. 운명이네. 토스트 맛은 그때처럼 아주 훌륭했고 나는 그때처럼 웃음이 나는 상황이었다. 추억에 음식에 추억을 덧대었다. 집으로 돌아와 요가 할 때 입을 옷을 주문하고는 한숨 더 잤다. 


요가는 2월부터 시작이다. 첫 수업은 퇴사하는 날. 탈출과 시작이라니. 의미 부여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꼭 맞는 일정이다. 그나저나 다음 토스트는 뭐하면서 먹고 있을까. 그때도 웃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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