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주차 엄지 리포트
11월 27일 토요일
친한 선배 카페 오픈을 축하하고자 1시간 40분 지하철 여행을 했다. 지하철로 끝과 끝이라 집순이로써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반가운 선배의 얼굴을 보자 큰 기쁨을 느꼈다. 피로가 가셨다. 주말에 몸을 일으켜 지하철을 타는 데 내 결혼식에 왔던 하객들도 소중한 주말을 써주었구나 느끼며 다시금 감사. 내 인생은 분명히 결혼 전과 후로 크게 나뉜다. 2년 만에 연락해도 축하를 하며 반겨주던 이들과 2개월 만에 연락했어도 내 곁을 떠난 이를 생각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끝끝내 지치고 힘들지만 결코 잊히지 않으리라.
#엄지 + 1
11월 28일 일요일
어쩐 일로 아침 7시에 기상해서 해 뜨는 걸 봤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주말을 버는 기분이라 너무 좋다. 계획 없는 주말에 일어나면 두 배로 좋다.
#엄지 + 1
11월 29일 월요일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상대는 50~60대로 추정대는 남자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도 나도 여보세요를 연발했다. 왜 누군지 말하지 않지?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윽고 내가 세 번째 여보세요를 뱉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어 아빠. 네? 전화 잘못 거신 거 같은데요. 당황한 내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 퉁명스레 대답을 하자 상대는 사과를 했다. 그의 죄송합니다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등에 땀이 났다. 짤막한 사이에 내 세상은 요동쳤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나를 찾아낼 수 있을 거란 공포로부터 나는 썩 자유롭지 못하다. 이 기분은 무척이나 별로다.
# 엄지 - 5
11월 30일 화요일
비대면 사주에 왕창 돈 쓴날. 왜 나는 운명에 이렇게 관심이 많으며 매번 돈을 쏟는가.............남은 것은 후회와 약간의 궁금증 해소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전화 탓이 크다.
# 엄지 - 1
12월 1일 수요일
퇴근 후 예정된 일정이 있었는데 지인의 컨디션 난조로 약속 불발. 약간 속상했지만 아픈 사람이 최우선이라 괜찮았다. 게다가 집순이는 당일 약속 캔슬도 그리 최악의 기분은 아니다. 내내 야근을 하던 남편이 오래간만에 정시 퇴근을 해 오랜만에 마트에서 함께 장을 봤다. 그리고 F친구들 (MBTI 중 3번째 알파벳 F)을 주말에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하여 단톡방에서 일정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쳤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무언가를 함께 할 때 기분을 좋아한다. 으쌰으쌰 한발 두발 나아가는 기분 최고다.
# 엄지 + 1
12월 2일 목요일
엄마랑 퇴근하고 밖에서 접선. 처음 겪어보는 만남 루트인 것 같아서 신선했다 (대부분 출발부터 같이하기 때문). 결혼 후 엄마를 홀로 두어 마음이 늘 쓰이지만 미혼일 때 보다 다섯 배는 더 잘하고 있으니 나름 밸런스가 맞다고 생각함. 엄마도 나도 마음이 훈훈한 날이었다. 물론 월요일 낯선 전화 에피소드는 입에도 올리지 않았다. 엄마가 그 분야로 걱정하기 시작하면 큰일이기에.
# 엄지 + 1
12월 3일 금요일
출근하면서 편의점에서 하루야채 삼. 예전엔 녹즙이나 야채주스 먹는 선배들이 참 신기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게 됨.
# 엄지 -
12월 1주차
엄지 리포트 - 2
별 거 아닌 십몇 초짜리 전화에 주간 엄지를 다 내려버렸다.
언젠가 완전히 솔직하게 글로 쓸 수 있을까.
이 감정을 컨트롤 할 능력은 내게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기분이 형편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