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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Feb 15. 2022

어쨌거나 연말은 기분이 좋거든요

12월 3주차 엄지프로젝트

12월 18일 토요일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펑펑 왔다. 작년 이맘때 신혼집에 입주하고 남편과 첫눈을 함께 본 기억이 났다. 벌써 1년이나 함께 동고동락했다니! 감동이 슬금슬금 차올랐다. 게다가 그 감정을 곱씹고도 남을 여유의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서 더 기쁨. 나는 아무 일정이 없는 하루를 극도로 좋아하고 일주일 중에 그 하루가 반드시 필요하다. 

#엄지 + 3


12월 19일 일요일

토요일 저녁 눈이 많이 와 배달이 안 되길래 냉장고를 털어 김치전을 부쳤다. 재료가 부실했는데도 의외로 맛이 좋아 남편과 신나게 반주를 즐김. 덕분에 일요일을 반나절을 통째 날렸지만 까치집마저도 즐거운 우리는 신혼. 오후 4시부터 밀린 집안일을 함께하고 여가 시간을 즐겼다. 저녁엔 김치찌개 끓여 먹으며 김치로 시작해 김치로 마무리한 주말. 

#엄지 +1 


12월 20일 월요일

월요일에는 자체적으로 워밍업 하듯이 일하는 편인데, 이 날 중요하게 체크할 업무가 많아서 쉴 틈 없이 바빴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해 스스로 보상을 해주고 싶길래 티빙 결제함. 스걸파(스트릿 댄스 걸스 파이터)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 역시 힘든 날에는 돈을 써야 제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맛에 열심히 일하고 돈 벌지. 

#엄지 + 3 


12월 21일 화요일

갑작스러운 동료 어머니 부고 소식에 퇴근하고 부랴부랴 조문 다녀온 날. 우연히 무채색 계열 옷을 집어 입고 출근해 다행이었다. 다음날 오전 발인이라 동료들은 회사에 걸치려고 놔둔 옷으로 갈아입고 지하철역에서 검은색 양말을 사기도 했다. 코로나로 빈소에 몇 명 까지 들어갈 수 있는지는 몰랐지만 문 밖에서라도 동료의 얼굴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반쪽이 된 동료의 얼굴을 보자 만감이 교차했던 날.

#엄지 - 2 


12월 22일 수요일

퇴근 후 정이네 집에서 저녁. 맥도날드 시켜먹을 생각에 들떠있던 강이와 나는 주문 불가 소식에 크게 낙담함. 각자의 크고 작은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롯데리아를 먹었다. 밤 11시 20분이 되어서도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던 우리는 겨우 엉덩이를 떼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가까운 벗의 신혼집이 15분 내외에 있는 것은 진정으로 축복이다. 

#엄지 + 2


12월 23일 목요일

이 악물고 한 정거장 전에 내린 날. 문 열리기 전까지 고민하는 동안 내 두발은 너무도 무거웠는데 막상 내려보니 그렇게 멀지도 않아 다소 허무했다. 지도를 보니 50미터 더 걷는 수준이었다. 겨우 그거 더 걸었을 뿐인 데 집안일도 척척하고 배달음식이 아닌 샐러드를 먹었다. 말도 안 돼. 고작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 내렸을 뿐인데. 내게 중요한 건 거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신호음이었다. 어쨌거나 어제랑 똑같은 오늘이 아니라는 그 신호탄이 귀했다. 

#엄지 + 5 


12월 24일 금요일

전사적으로 연차를 쓴 직원들이 많아 사내 분위기가 괜스레 들떠 있던 날. 점심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커다란 꽃바구니를 팔에 낀 젊은 여성 분이 언젠가 본인 꿈이 꽃집을 차리는 것이라며 꽃과 본인을 소개했다. 어쩐지 반짝이는 눈망울을 응원하고 싶어졌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매한 나의 꽃에게 이브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약간의 감성 마케팅이 들어간 비싼 금액(개당 1만 원)이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척박한 사무실에서 꽃을 잘 피워보리라고 다짐함. 한 가지 신기한 것은 지갑을 연 사람은 짝꿍 동료와 나뿐이라는 점. MBTI가 똑같아 우리만 동요했나 싶었으나 어쨌거나 금요일이고 연말이고 기분이 좋았으니 되었다. 

#엄지 + 3 




12월 3주차
엄지리포트 +15

연말이라 그런지 촉촉한 마음들로 꾸렸던 한 주였다.
새로운 달력을 넘기기 전 어쩐지 대충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부담이 덜어진다. 일 년 내내 이런 마음으로 살면 스트레스 덜 받으려나. 괜찮은 다음날이 올 거라는 대책 없는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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