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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Aug 30. 2018

벚꽃엔딩, 2012년을 부르는 노래


지난 연말 난생처음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유난히도 싫어하는 나란 사람에게 공연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곳에 가자고 제안한 소개팅남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본 커다란 공연장 크기에 휘둥그레진 것도 잠시 첫 번째 노래가 시작됐다. 좋아하는 목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렇게 고음질로 들을 수 있다니! 오길 잘했어! 나는 크게 감동했다. 첫 무대에선 주인공들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오오 연출 멋있어. 짧았던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엄청 크게 쳤다. 공연이 다 끝나고 이 남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꼭 밥을 사야겠다 다짐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곧바로 두 번째 노래가 흘러나왔다.


재생 시간으로 한 8초쯤 흘렀을까. 1.2.3.4.5.6.7.8 진짜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진짜 그냥 와락 하고 나왔다. 뭐 어떻게 손 쓸 새가 없었다. 이 미친 감성 세포야 정신 차려, 왜 여기서 갑자기 울어. 마음을 진정시켜보려 노력했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온 어반자카파도 당황했을 속도였다.


꼭 무슨 슬픈 구남친 사연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오해하기 딱 좋은 이 상황을 중지시켜야 해. 천장을 보고 꾹꾹 눈물을 눌러 봤지만 잘 안됐다.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어째 눈물이 더 새어 나왔다. 고장난 수도꼭지 같았다. 앞에 무대에서 노래는 계속 되고 있었고 나는 1절이 끝날 때까지 눈물 참기 위해 혼비백산이었다. 당연히 그는 당황했고 나는 더 당황했다. 사연이 있긴 있었지만 사랑에 대한 건 전혀 아니었는데…그 노래가 뭐였냐면 바로 이 노래다.



혼자 하는 말 혼자 자는 밤
혼자 있는 것 혼자 사는 것
그건 내게는 당연한 것
또 너에게는 별일 아닌 것

고단한 몸 소란한 삶
요란한 맘 또 혼자 남은 밤
그건 내게는 당연한 것
또 너에게는 안쓰러운 것
.
.
.
혼자 걷는 밤
혼자 하는 약속
혼자 깊은 새벽
혼자 오는 아침

/어반자카파 - 혼자



당시 나는 이 노래를 출근길에 매일 들었다. 여름 새벽이야 어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들.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사람도 많고 거리도 온통 환해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겨울 새벽은 너무나 쓸쓸하고 깜깜하고 아무도 없다. 솔직히 진짜 무섭다. 거리에 개미 한 마리 없는 느낌이다. 온통 깜깜하고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다. 그마저도 한두 개는 꼭 고장 나 있다. 깜빡깜빡. 가지만 남은 나무는 앙상하고 입김은 뿌옇게 나오고 어깨는 움츠러들고 너무 춥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으스스하면서 쓸쓸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무도 없는 까만 길을 걸으며 매일같이 저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혼자 걷는 밤, 혼자 깊은 새벽, 혼자 오는 아침 이란 구절을 들을 때마다 휴 하고 한숨을 조금 내쉬면 뿌연 입김이 나왔다. 이 시간이면 다 잘 텐데. 혹시나 하고 카톡 창을 열어봐도 이 시간에 일어나있는 사람은 없다. 내 친구들 다 자겠지. 여기 이 골목에 나 혼자만 일어나있어. 불 켜진 집이 하나 없다.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선택한 직업인데…이 세상 청승은 모아 모아 혼자 다 떨며 그 노래를 들으며 걸어간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정도였다.


그 때 나 혼자 듣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노래가, 쓸쓸한 새벽길을 밝혀주던 그 노래가 커다란 공연장에 울려 퍼지던 순간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왈칵하고 뭔가 올라왔다.




 



노래는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버스 창가에 가만히 앉아 보는 풍경도 BGM만 있으면 갑자기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하는 회상신도 막 추가된다. 그때 그렇게 말했더라면 조금 달라졌을까. 상상력을 발휘하는 순간 누군가 벨을 훅 누르고 한쪽 이어폰을 뽑으면 "이번 정류장은 회사입니다. 현실입니다" 하고 돌아오지만.




벚꽃엔딩은 당신의 2012년을 소환시킬 것이다.


노래의 기묘한 능력은 또 있다. 계속해서 반복해 들은 하나의 노래는 그 시절을 순식간에 '소환'시키는 힘도 가지고 있다. 봄만 되면 차트 1위에 오르는 벚꽃엔딩이 대표적이다. 벚꽃엔딩이 발매된 해가 2012년인데,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 노래를 듣기만 하면 소환되는 각자의 2012년의 기억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 충격적으로 좋았기에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을 수는 있어도 한 번만 들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엔 2012년의 봄을 소환시킬 힘이 있다.


나에게도 기억나는 한 장면의 봄이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어디에 갔는지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무슨 기분이었는지 6년이나 지났는데 마치 작년 일처럼 기억난다. 당연히 내가 몇 살이었는지도. 나는 벚꽃엔딩을 들으면 2012년 봄이 정확하게 떠오른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남기는 것이지만 이렇게 한 가지 노래를 일정 기간에 반복해서 듣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사진이나 일기에는 내 손으로 직접 적은 과거의 나의 기억을 불러다 주지만 음악은 내가 어딘가에 전혀 기록해두지 않았던 숨은 기억을 불러다 주기 때문이다.


2005년 바닷가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해수욕장에 설치된 무대에서 어떤 댄스곡이 나왔고 그 노래에 맞춰서 어느 댄스팀이 올라와서는 춤을 췄다. 몇 년이 지나서 다시 그 노래를 듣게 됐는데 바로 그 해수욕장이 떠올랐다. 당시에 듣고 좋아서 재생목록에 넣고 (당시에는 MP3) 그해에 한참 반복해서 들었던 것이다. 보아의 'moto' 라는 곡이었고 이후에 전자기기들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내 재생목록에는 몇 년간 빠져있었던 노래였다.


해수욕장이 떠오른 것까지는 그럴 만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처음으로 친구와 갔던 바다였으니까. 특별하니까. 그런데 오랜만에 들어 반가웠던 그 노래가 재생될수록 그날 내가 무슨 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지 그 바지에 어떤 음료수를 쏟았는지까지 갑자기 막 생각났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부터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조금은 더 끈기 있게 오랫동안 듣게 됐다. 원래도 반복해 듣긴 하지만 조금 더 꾸준히 들어 두는 것이다. 언젠가 기억해 낼 수도 있는 오늘날의 평범한 일상을 저장해두고 싶어서. 누구나 자신만의 기억 소환 재생목록을 만들 수 있다. 어떤 노래로 채울지는 본인의 몫이다. 나는 올해 여름 또 한 곡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먼 훗날 언젠가 기록적으로 더웠던 어마어마한 폭염 속 어떤 하루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하게 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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