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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탄만두 Sep 25. 2018

'무나니즘'은 어쩐지 쑥스럽다



친한 친구가 옷가게를 성북구에서 강남구로 이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어 마냥 다시 돌아갔다. 애초에 처음에 시작한 곳이 강남구였으니까. 첫 오픈도 두 번째 오픈도 이번 세 번째 오픈도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이 친구가 처음 매장을 열었을 때 돈나무라고 불리는 금전수를 사 들고 방문했다. 달력을 넘길수록 친구는 승승장구했고 나는 금전수 한 그루를 더 사서 우리 집에도 두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당연히 돈나무 때문은 아니겠지만 왠지 그냥 한 그루 갖고 싶었네. 내 친구 '송'이 성장한 이유는 그저 그녀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옷가게를 열고 나니 옷 걱정은 사라질 것도 같지만, 결코 아니었다. 학창시절부터 송과 나의 취향은 10000% 달랐기 때문. 소위 말하는 '유니크'한 옷을 좋아하는 그녀가 본인의 매장에 꾸민 옷들은 하나 같이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사실 뭐 내 체형도 한몫했다. 나는 어깨선이 딱 맞게 떨어지는 옷을 좋아한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어깨고 여기서부터는 팔입니다> 하는 명확한 경계선을 가진 옷. 이유는 내가 어깨가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가오리핏 상의가 유행했을 때 나는 울고 싶었다. 옷가게만 들어갔다 하면 여기도 가오리 저기도 가오리. 온통 어깨선이 어깨 아래로 내려온 옷들로 가득했다. 마음에 드는 옷 (=날씬해 보이는 옷)을 고르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유니크'란 도무지 내가 소화할 수 없는 단어가 분명했다. 어느 한쪽에 구멍이 뻥 하고 나 있거나 등판이 훅 찢어져 있던지 감자 자루처럼 큼지막하다거나 이게 성인 여성의 옷인가 싶은 작고 타이트한 극단적인 옷 천지인 송의 매장에서 내가 고심 끝에 집어 든 것은 신발이었다. 혹은 가방. 그마저도 몇 번 없었다.






나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미안함이 자리했다. 친한 친구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옷을 못 팔아 주다니. 송은 나를 포함한 친구들에게 원가 수준의 금액으로 할인해서 옷을 줬다. 이윤으로 따지자면 친구들에게 판매하는 옷에서 얻는 수익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마워 매장에 방문할 때마다 커피나 주전부리를 들고 갔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불편했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기분이 들어 몹시 울적했다. 아마 송은 몰랐겠지만.


얼마 전 가을용 플랫슈즈가 하나 필요해서 매장에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사고 싶은 신발의 색상 종류는 3가지였다. 레드, 블랙, 베이지. 매장에 내 사이즈가 없어서 한 사이즈 작은 신을 신어보고는 베이지 색상으로 주문해두었다. 레드는 나같은 '무나니스트'에게 너무 튀는 색상이었고 검정 신과 흰색 신발은 집에 많으니까 베이지를 신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신발이 집으로 배송되었는데 웬걸. 내 사이즈로 온 신발이 정말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발이 큰 사람들은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감정인데(아니면 어쩌지) 샘플로 나와 있는 신발이 예뻐서 "이거 250주세요" 외친 후에 직원이 내 사이즈 신발을 찾아다 주면 갑자기 마음이 파사삭 식는 그 느낌. 키가 크니까 발도 큰 건 당연한 일인데 작은 신발이 더 예뻐 보이는 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연한 베이지색의 신발을 신으니 어째 발이 더 커 보이는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헐 너무 안 어울리는데 한 마디 던지고 가는 바람에 정말이지 색상이 바꾸고 싶어졌다. 어쩐지 엄마한테 인정받아야 쇼핑을 잘한 기분이 든다. 쇼핑몰에서 구매한 옷은 단순 변심에 의한 교환은 어렵지만 내 친구가 사장이니까 도전한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송에게 카톡을 보냈다. 송은 내게 배송비가 더 들겠다며 한 소리했지만 흔쾌히 색상을 변경해주겠다고 했다. 차갑지만 따스한 그녀…다음날 퇴근길 쭐레쭐레 신발을 들고 찾아가 내가 변경하겠다고 한 색상은 블랙이었다. 송과 직원들은 레드를 강력추천했다. 이 신발은 쨍하니 빨강이 예쁘다고. 너 검은색 신발 많지 않냐고.


맞다. 나 검은색 신발 엄청 많다. 나의 신발장과 옷장에는 대부분 흰색과 검은색 뿐이다. 검정과 흰색 사이사이 아이보리나 회색 계열의 옷도 참많다. 나는야 무채색 인간이다. 아마 내가 동물이었다면 우리 고양이와 같은 털을 가졌을 지도. 우리 집 냥이는 회색, 흰색, 검은색 털 뿐이니 그것만 빠졌다가 그 자리에 고스란히 같은 색 털이 다시 자라난다.


색상을 변경하러 가는 당일에도 오백 번쯤 고민했다. 빨간 신발을 신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나의 신발장엔 이미 검은색 신발이 많고 그 빨간 신이 내 눈에도 예뻐 보였던 건 사실이니까…퇴근 후 버스에서 빨간신발, 빨간구두를 검색해서 엄청나게 봤다. 그러다가 문득 올해 봄인가 붉은 계열의 신발을 사놓고 5번 밖에 못 신었던 게 생각이 나서 그냥 검정으로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으이구! 그래 검정해라 검정!


나의 최종결정에 송이 한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한순간에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송은 백 퍼센트 장난이었다. 그녀의 말투를 십수 년 동안 들었으니 잘 안다. 악의 없는 말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한순간에 용기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왜 '무나니즘'는 부끄러운가. '무난함'을 좋아한다는 건 어쩐지 쑥스러운 걸까. 마치 번지점프대 위로 올라갔다가 뛸 듯 말듯 주변 사람들을 기대하게 해놓고선 끝내 "아… 저 진짜 못하겠어요" 하고 터덜터덜 내려온 그런 패배자의 기분이 들었다. 약간은 부끄럽고 창피한 기분. 마치 뭔가를 해내지 못한 찜찜한 이 기분.



무난-하다 (형용사)
1. 별로 어려움이 없다
2.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다
3. 성격 따위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하다



<무난하다>의 사전적 정의다. 별로 어려움이 없다는 첫 번째 문장처럼 언제나 누구나 별 어려움 없이 입을 수 있는 무난한 옷들을 좋아하는 나는 '무나니스트'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성격과도 닮았다.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사람. 누구나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별 단점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한순간에 짜잔 하고 주목은 못 받겠지만. 옷장 안에 하나쯤 있는 옷처럼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겐 흰색, 검은색이 타고난 털처럼 잘 어울리듯 송에게 '유니크'한 옷은 너무 잘 어울린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볼 때마다 몇 번이고 나도 사고 싶어졌다. 그녀의 빼어난 옷 태에 홀려 "오 나도 그거 입어볼래" 하고 입어보면 웬 감자포대 여기 있어요. 누구나 자신만의 무늬가 있는가 보다. 송이 나처럼 평범한 옷을 입고 틀에 박힌 사무실에 갇혀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 안 어울리는 것처럼. 나의 태생적 무늬는 '무난함'이었는지도.


태어날 때부터 나만의 무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다만 나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입어봐야 알 수 있었다. 직접 입어보고 일상으로 나와 활동해보면 곳곳 불편함이 느껴졌다. 반대로 보기에는 영 이상할 거라고 생각했던 옷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날도 더러 있었다. 결국 다 경험해봐야 안다. 문밖을 나서야만 알 수 있다.  잘 어울린다 생각한 옷들 조차도 입고 문밖을 나서야 남들이 칭찬해준다.





이 과정들을 반복하다 보면 한 번 쓱 보기만 해도 '어머 이건 내 옷이야' 혹은 '와 이건 절대 못 입는다' 하는 옷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단지 옷을 살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일이 내게 꼭 맞는 옷처럼 어울리는지. 누가 나의 손목, 발목을 조르며 불편하게 하는지.  여러 번의 실패와 수 없는 후회 끝에 <맞춤 정장> 같은 사람과 <수제 맞춤 신발> 같은 편하고 오래 걸을 수 있는 직업을 곁에 두게 되는지도 모른다. 과정 과정에서 조금은 창피하기도 하고 숨 막힐 듯 불편하기도 하고 아주 여러 번 돈이 아깝기도 할 테니까.


바꾼 신발은 마치 그것을 신고 태어난 사람처럼 내게 잘 어울렸다. 이제 나는 이 구두를 신고 이직 면접을 보러 다닐 계획이다. 빨간 구두는 나를 새 회사에 데려다줄 수 없었지만 이 신발은 가능하다(역시 잘 바꿨다). 좋은 신발은 신고 있는 사람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오래된 좋은 말이 있다.


가벼운 새 신발의 무게처럼 가뿐하게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길 바라며 문을 열고 나서본다. 혹여 발이 불편하더라도 나갈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문밖에 있으니까. 발뒤꿈치가 다 까지고 피가 난 이후에는 불편한 신발을 집어 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조금 더 단단히 준비하게 되겠지. 아주 오래전부터 내 가방엔 항상 반창고 한 묶음이 들어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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