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면접 본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을 들은 나는 30분 후에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했다. 30분 뒤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고 인사팀 담당자에게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해서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말을 전했다.
10월의 첫날, 어제는 꼭 비가 올 것만 같은 날씨였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옷이 마음에 주는 영향은 참 대단하다. 각 잡힌 정장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절로 세워졌다. 청바지 입고 터덜터덜 출근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이 좋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벼운 떨림으로 가득했다.
면접 시간보다 상당히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매일 왕복하는 지금의 회사로부터 머지않은 곳이었지만 길치에게 초행길은 늘 변수가 있기에. (낮에 갔던 길도 밤에 가면 초행길이다) 면접 예정인 건물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카페가 있다는 것도 파악했으니 여유롭게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마음을 다잡을 계산이었다. 야심 차게 써놓았던 자기소개서도 챙기고 여러 질문의 답변을 위해 준비했던 서류도 한 움큼 집어 가방에 넣었다.
매일 타는 마을버스를 타고 매일 가는 지하철역에 왔다. 면접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기 싫을 것 같았다. 아마 할 말이 잔뜩 쌓여 있겠지. 그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근무하는 친구와 저녁이나 먹을까 싶어 친구 강이에게 연락을 했다.
나: 오늘 몇 시에 마쳐?
강이: 나 오늘 10시까지 야근할 거야 하하
나 : 헐 나 오늘 면접인데...
강이 : 헐 그럼 야근 안 해볼게.
월 초라 강이는 바쁜 모양이었다. 내가 물어본 시간이 오후 2시 즈음 이었는데 이미 늦은 밤 야근을 계획하고 있었다. 너 바쁜 날이니 괜찮다고 했지만 강이는 너하고 만나는 건 무슨 일이든 제칠 수 있다며 응원을 해주었다. 세상에.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었다. 교대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친구들과의 만남이 정말 어려워졌다.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일하는 게 이렇게 외로운지 정말 몰랐다. 부디 이 회사가 나의 외로운 이 상황을 1그램이라도 낫게 해주기를.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희망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희망이 부풀었던 이유는 모집공고에 정확한 근무 형태가 기재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주말 근무 및 교대근무를 필수로 한다. 아무래도 지원자들이 비선호 하는 사항이기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공고 어딘가 귀퉁이에, 혹은 괄호 안에 작은 글씨체로 명시되어있다. 뉴스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 변동 있음. 주말 근무 발생할 수 있음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공고는 그 말이 어디에도 없었다. 에이 뭐 그래도 당연히 있겠지 생각은 했지만 마음속에 혹시나. 호옥시나 하는 작은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환승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환승역에서 나는 길을 헤맸다. 길을 헤맨 이야기는 써도 써도 부끄럽다. 정말 부끄럽지만 또 헤맸다. 서울 살면서 어떻게 된 게 매번 여행자다. 긴장 했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뭐가 있다며…긴장은 긴장이고 길 찾는 건 별개의 영역인지 어쨌거나 헤맸다. 비교적 빨리 정신을 차리고 되돌아갔으나 상당 시간을 잡아먹었다. 면접장에 20분은 일찍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딱 맞춰 도착할 모양새였다.
심장은 쿵쿵 뛰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오래간만에 신은 높은 구두가 삐걱거렸다. 아 정말 미치겠네. 화장실도 한번 가고 싶었고 편의점에서 물 한 통도 살 계획이었는데 계획 전면 수정. 누가 봐도 면접러인 나는 지하철역에서 달렸다. 지금 달리는 거 조금 창피해도 괜찮아. 늦는 건 무조건 탈락이야.
헥헥 거리며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앞에 도착한 게 20분 전이었다.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됐다 안 늦었어. 이윽고 면접장이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는 멈춰 섰고 정수기가 문 앞에 있길 바랐지만 경력직 면접자 회의실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얼굴은 빨개졌고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대기실엔 이미 두 명의 지원자가 앉아 있었다.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목이 타들어 갔는데 테이블에 비타민 음료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만세! 병을 돌려 땄는데 똑똑하고 노크 소리.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뭐뭐뭐 입니다. 말을 하니 이쪽이 아니라 다른 대기실이란다. 가나다순으로 나뉘어있다고 했다. 맙소사 지원자가 대체 몇 명이야. 저 이거 뚜껑 땄는데요 하하 하고 내가 웃었다. 인사팀 담당 직원은 괜찮다며 나를 다른 대기실로 안내했다. 뚜껑 딴 음료와 함께 나는 이동했다. 그곳에는 한 명의 지원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분과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음료를 마셨다. 잠시 후 한 명의 지원자가 또 도착했다. 인사팀 직원은 대기실로 다시 들어와선 뭐 궁금한 점 없으시냐 물었다. 없긴요. 한 트럭은 있습니다만.
근무 형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지원자들도 마침 궁금했는데 잘됐다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인사팀 직원이 하는 말이. 그건 합격하셔야 논의하실 내용 같은데요. 했다. 오 뭐지? 갸우뚱 해지는 답변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공지는 해주었다. 철야 근무가 있다고. 나머지 사항은 합격 이후에 들으시면 되는데 기본적으로 3교대라는 말과 함께 그는 사라졌다.
사실 나는 이 팀이 철야 근무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왔다. 업계가 좁긴 했는지 한두 사람만 건너도 아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 철야 근무를 한 달에 몇 번 하는지였다. 한 달에 1번이라고 하는 소식을 전한 사람도 있었기에 그 정도면 고민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지원서를 넣었다. 자세한 건 와서 물어보자 하는 마음에. 근무 형태야 우리 팀도 계속 바뀌는걸.
그리고는 입장. 인사. 질의응답. 퇴장
자세한 면접내용은 쓰지 않겠다. 그룹면접이기도 했고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지원자들의 사생활도 있으니까. 전반적으로 내가 그동안 봐왔던 면접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한가지 얻은 게 있었다. 나에게 돌아온 질문 중에 현재 팀에서 몇 명이 근무하나요? 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나는 N명입니다 했는데, 면접관을 포함한 그 방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는 건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그 인원으로 팀이 운영되나요? 라는 질문과 충격적인 표정은 내겐 득이었다.
어디로 가더라도 지금의 팀만큼 최소인원 최대효과를 내야 하는 팀은 없나 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인원으로 굴러가는 거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참으로 고마운 표정이었다. 대기실에선 회사 이름을 말하자 지원자들이 어? 그 회사 좋지 않나요? 했고 나는 그저 웃었다. 아마 나랑 같은 면접장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한 가지는 얻었겠지 싶다. 아 저 팀은 가지 말아야겠다.
궁금했던 철야 근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 답변을 듣고선 면접 내내 나는 사기가 조금은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 와도 나는 후회하겠구나.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건물을 나오면서부터 엄청난 두통에 시달렸다. 강이와 약속을 확정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다. 집에 도착해서 기절. 두시간 자고 일어나 마음을 정했다. 분위기 보아하니 내가 합격할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합격한다 해도 가지 말자. 분명 후회할 거야. 지금은 철야도 없는데 힘들잖아.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최종 합격이었다. 얼떨떨했다. 하루 정도 생각해 볼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인사팀은 단호박이었네. 결원이 발생한 채용이라 오늘중에 연락주셨음 좋겠다고. 나도 알겠다고 했다. 고민이 길어진다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고민은 짧게. 후회도 짧게. 내 자리로 돌아와 어젯밤 짤막한 고민을 이었다.
마음의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가겠다고 해. 당장이라도 이 회사를 나갈 수 있어. 너 그렇게 퇴사하고 싶어했잖아. 뭘 망설이는데? 그럼에도 망설였다. 당장 나가고 싶은 건 맞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이 하고 싶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다닐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을 찾고 있었다. 합격 전화를 준 회사가 지금 회사보다 나은 점을 말하라면 10초 만에 5개는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철야 근무를 해가면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있는지 생각해보면 글쎄. 2교대 하는 지금도 괴로운 데...
훗날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선택에는 후회가 반드시 따르니까. 그래도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자발적으로 내가 보냈다. 때문에 후회하는 날이 오더라도 되도록 그러지 않으려 한다. 내가 내 선택을 누구 보다 믿어줘야지. 그래도 그 전화 덕분에 조금은 쭈글쭈글해졌던 자존감이 다려졌다. 감사한 일이었다. 회복된 자존감을 꼭 잡고 나의 이직 준비는 계속된다. 분명 오늘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알게 될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