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흐려지는 망원경

by 커다란고양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미르를 떠나보낸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왔다.

계절은 멈추지 않고 돌아갔고, 나도 그 흐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로 인해 먹먹했던 가슴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바람이는 여전히 췌장관리를 하고 있고,

그렇게 위험신호는 없는 것 같았다.

7개월 캣초딩 시절에 비하면 움직임이 덜해졌지만,

여전히 밥은 잘 먹었고 말도 많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더 나를 찾는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 약을 먹이려고 전쟁을 치르지만

녀석은 예전보다 더 자주 내 옆에 와서 누웠고,

더 오래 내 눈을 바라봤다.


나무는 여덟 살이 되었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았고,

여전히 베란다 리빙박스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미르가 좋아하던 그 자리를 이제는 나무가 물려받은 셈이었다.

가끔 나무가 리빙박스 위에서 허공을 바라볼 때면,

혹시 미르가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평소처럼 베란다에 나가 망원경에 눈을 가져갔다.

미르를 보러 가는 시간이었다.

슈퍼문 이후로도 나는 매일 밤 망원경을 들여다봤다.

비가 오는 날이나 구름이 낀 날을 제외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고양이별을 관측했다.

미르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 대고 초점을 맞추려고 노브를 돌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흐릿하게 초점이 맞지 않았다.

평소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눈이 피로한 줄 알았다.

요즘 야근이 많아서 눈이 침침해서 그런가?

하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렌즈를 확인해 봤다. 대물렌즈 캡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봤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비춰봤다.

렌즈 표면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축복이 다한 건가..."


며칠이 지났을까? 렌즈는 점점 더 흐려졌다.

처음에는 미르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고양이별 자체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냥 뿌연 빛 덩어리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불안하지 않았다.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매일 밤 미르를 보던 시간이 사라진다는 건 분명히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무너지거나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미르는 거기 있다.

렌즈가 흐려져서 보이지 않을 뿐,

미르는 분명히 고양이별에서 잘 지내고 있다.

여전히 친구들과 놀며,

가끔은 강아지별로 마실을 가기도 할 것이다.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뿐, 미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이제 마음속에 별이 있었다.

슈퍼문 그날 밤, 무지개다리 위에서 미르를 안았던 기억.

미르의 털 냄새, 따뜻한 체온, 까슬까슬한 혀의 감촉.

그리고 미르가 해줬던 말들.

집사를 내가 골랐다는 것, 13년이 행복했다는 것, 자책하지 말라는 것.


그 모든 기억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망원경이 없어도 눈을 감으면 미르가 보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망원경을 베란다 구석에 세워두었다.

버릴 수는 없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더 이상 매일 밤 렌즈를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대신 그 시간에 바람이와 나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바람이 등을 빗겨주고, 나무와 낚싯대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둘을 무릎에 올려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그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미르와 보냈던 13년처럼,

바람이와 나무에게도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느 날 밤, 바람이와 나무와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맨눈으로는 고양이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 수많은 별 중 어딘가에 미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미르야, 아빠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창밖을 향해 말했다.


"바람이랑 나무도 건강해. 걱정 마."


별을 보려 하지 말고, 지금 옆에 있는 아이의 눈을 보자.

내가 일기장에 적었던 말이 떠올랐다.


바람이의 에메랄드빛 눈, 나무의 호박색 눈을 바라봤다.

그 눈 속에도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창밖의 별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마치 미르가 대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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