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개기월식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르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나 하나 더 말해줄 거 있어."
"뭔데?"
미르가 앞발로 내 무릎을 톡톡 쳤다.
집중하라는 뜻 같았다.
"아빠는 내가 아빠가 선택해서 집에 온 줄 알지?"
"응? 그거야 뭐... 입양 공고 보고 연락한 거니까."
"그게 아니야."
미르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빠를 골랐어."
나는 미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소리지?
"무슨 말이야? 네가 날 골랐다니."
"말 그대로야."
미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나 원래 저 별에 있었어. 고양이별. 거기서 태어났어."
"뭐?"
"지구에 내려가기 전에, 저 위에서 먼저 살았어. 다른 고양이들이랑 같이."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르가 계속 말했다.
"어느 날, 다시 지구에 내려가서 살아볼 생각 있냐고.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볼 생각 있냐고."
"그래서?"
"가겠다고 했어. 근데 조건이 있었어."
미르가 앞발로 다리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내가 직접 집사를 고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나는 멍하니 미르를 바라봤다. 미르가 나를 선택했다고?
미르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근데 제일 따뜻해 보였어."
"나? 왜?"
"몰라. 그냥 느낌이었어. 집사가 웃는 거 봤는데, 그 웃음이 좋았어. 혼자 사는 것 같은데, 외로워 보이면서도 따뜻해 보였어. 저 사람이면 나를 잘 돌봐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미르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래서 아빠를 골랐어. 내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미르를 입양한 게 아니었다.
미르가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저 멀리 별에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골라서 내려온 것이었다.
"그럼... 그럼 처음부터 다 계획된 거야?"
"계획이라기보다는... 인연? 그런 거 있잖아. 다른 형제들한테 자꾸 눈길을 주는데 나 선택 안 하면 어쩌나 했지."
미르가 내 다리 위로 올라왔다.
익숙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 13년 동안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정말?"
"응. 집이 제일 좋았어. 밥도 맛있었고, 잠자리도 푹신했고, 무엇보다 아빠가 좋았어."
미르가 내 턱 밑에 머리를 비볐다.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아빠한테 갈 거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미르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 나를 골라줘서 고마워."
"고마운 건 나야. 13년 동안 사랑해줘서."
미르가 그르렁대며 말했다.
그 진동이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졌다.
그때,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달이 거의 다 밝아졌다. 개기월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시간 다 됐어."
미르가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벌써?"
"응. 다리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가야 해."
미르가 내 앞에 섰다. 꼬리를 높이 세우고, 당당한 자세로.
"울지 마."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자꾸만 새로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 울어."
"거짓말. 지금도 울고 있잖아."
미르가 피식 웃는 것 같았다.
"나 이제 가야 해. 근데 슬퍼하지 마."
"어떻게 안 슬퍼해."
"나 안 사라지잖아. 저 별에 있잖아. 망원경으로 언제든 볼 수 있잖아."
미르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고양이별이 있는 방향이었다.
"거기서 기다릴게. 오는 날까지."
"나... 나도 언젠가 거기 갈 수 있어?"
"당연하지. 언젠가 이 다리 건너서 올 거야. 그때는 내가 마중 나갈게."
미르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때까지 바람이랑 나무 잘 부탁해. 걔네도 나중에 올 거니까. 그럼 넷이서 같이 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르가 뒤로 물러섰다. 한 발짝, 두 발짝.
다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안개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랑해! 다음에 또 보자!"
나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나도 사랑해, 미르야! 기다릴게!"
미르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리 저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얀 털이 흩어지는 빛 속에서 흔들렸다.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
마지막으로 미르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눈인사였다. 고양이들의 사랑 표현.
"잘 가, 미르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미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하얀 털뭉치가 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졌다.
다리도 희미해졌다.
붉은 빛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곧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베란다 난간 위에 서 있었다.
하늘에는 다시 밝아진 보름달이 떠 있었다.
블러드문은 끝났다. 평범한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하얀 털 몇 가닥이 붙어 있었다.
미르의 털이었다.
나는 그 털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 문 앞에 바람이와 나무가 서 있었다.
녀석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이가 짧게 울었다.
냐아.
"다녀왔어."
나는 베란다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이와 나무를 한 팔씩 끌어안았다.
"미르가 너네 잘 챙기래. 알았지?"
바람이가 그르렁대며 안겼고, 나무가 내 다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창밖으로 달이 빛나고 있었다.
저 너머 어딘가에 미르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