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걷히자, 미르가 보였다.
다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풍성한 하얀 털이 붉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역삼각형의 작은 얼굴, 분홍색 코, 그리고 투명하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
틀림없었다.
내 미르였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꼬리를 바짝 세웠다.
그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네 개의 다리가 다리 위를 가볍게 차며 달려왔다.
뒷다리도 멀쩡했다.
마비되어 질질 끌리던 그 다리가 지금은 힘차게 땅을 박차고 있었다.
나도 뛰었다.
맨발이 다리 위에 닿을 때마다 폭신한 감촉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냥 뛰었다. 미르를 향해.
다리 중간에서 만났다.
미르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녀석을 받아 안았다.
풍성한 털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따뜻했다. 살아 있을 때의 그 온기 그대로였다. 아니, 더 따뜻했다.
마지막에 만졌을 때의 그 차가움이 아니었다.
꼬순내가 났다. 미르 특유의 그 냄새.
13년 동안 매일 맡았던 그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미르야..."
목소리가 떨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미르가 내 턱 밑에 머리를 비볐다.
예전에 늘 하던 것처럼. 그르렁거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 진동이 온몸으로 퍼졌다.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미르를 꼭 껴안은 채 울었다.
체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서럽게 울었다.
13년을 함께하고, 갑자기 떠나보내고, 매일 밤 망원경으로만 바라보던 내 아이가 지금 내 품에 있었다.
미르가 내 뺨을 핥았다. 까슬까슬한 혀의 감촉이 느껴졌다.
눈물을 닦아주는 것 같았다.
"울지 마,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미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냐옹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한 사람의 말이었다. 맑고 투명한,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
나는 눈물 젖은 눈으로 미르를 바라봤다.
녀석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진짜... 진짜 말할 수 있는 거야?"
"여기서는 할 수 있어. 이 다리 위에서는."
미르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내 앞에 앉았다.
꼬리를 앞발 위에 얌전히 감았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또 눈물이 났다.
"왜 울어, 아빠. 나 여기 잘 있는데."
"그래도... 그래도 보고 싶었어. 네가 떠나고 나서 너무 힘들었어."
"알아. 다 봤어. 매일 밤 망원경으로 나 보면서 울던 거."
미르가 코를 킁킁거렸다.
"눈 항상 부어 있던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미르다웠다.
걱정해 주는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그 말투.
"그날... 그날 왜 그랬어?"
내가 물었다. 계속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내가 성당 갔을 때... 왜 갑자기 아팠어?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잖아."
미르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정한 거야."
"뭐?"
"떠날 시간. 내가 정했어."
나는 미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르가 계속 말했다.
"아빠가 힘들까 봐. 내가 아픈 모습 오래 보여주기 싫었어.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러다 결국 떠나는 거... 그거 보여주기 싫었어."
"그래서... 그래서 갑자기 떠난 거야?"
"응. 아빠가 성당 갔을 때 떠나면, 덜 힘들 줄 알았어. 마지막 아픈 모습 안 보여줘도 되니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미르는 나를 위해 그랬던 것이다.
내가 덜 힘들게 하려고. 아픈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혼자서 그 고통을 견디고 떠났던 것이다.
"바보야..."
나는 미르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됐어. 아파도 괜찮았어. 옆에만 있어줬으면 됐어. 마지막까지 같이 있고 싶었어."
미르가 내 품에서 꿈틀거렸다.
"아빠는 늘 너무 꽉 안아."
"미안... 미안해..."
나는 힘을 풀었지만 놓지는 않았다. 놓으면 다시 사라질 것 같았다.
미르가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빠."
"응?"
"나 후회 안 해."
"뭘?"
"아빠네 간 거. 13년 동안 같이 산 거. 하나도 후회 안 해."
미르가 내 코에 자기 코를 갖다 댔다.
고양이들끼리 하는 인사.
미르가 살아 있을 때 종종 나한테 해주던 행동이었다.
"오히려 고마워. 나 데려가 줘서. 맛있는 거 먹여줘서. 늘 이뻐해 줘서. 매일 이름 불러줘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울기만 했다.
미르가 내 눈물을 또 핥아줬다.
"짜."
"뭐?"
"눈물. 짜."
나는 울다가 웃었다. 웃다가 또 울었다.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다.
미르가 내 옆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붉은 달이 여전히 떠 있었다.
"시간 별로 없어."
"알아..."
"그전에 하나 더 말해줄 거 있어."
미르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호박색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났다.
"아빠 너무 자책하지 마."
"뭘?"
"전화 못 받은 거. 마지막에 옆에 못 있었던 거. 그거 아빠 잘못 아니야."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게 나를 가장 괴롭히던 것이었다.
병원에서 온 전화를 못 받은 것. 미르가 숨을 거두는 순간 옆에 없었던 것.
그 죄책감이 매일 밤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하지만 아니야."
미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 떠날 때 안 아팠어. 편했어. 그리고 아빠사 관에 이름 적어준 거, 다 봤어. 그거면 충분해."
미르가 앞발을 들어 내 손등을 툭 쳤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책해. 알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르가 만족한 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바람이랑 나무 잘 챙겨. 걔네 지금 창문에서 우리 보고 있을걸."
나는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베란다 창문 안에서 두 개의 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바람이와 나무였다.
"걔네도 아빠 필요해. 나처럼."
"알아. 잘 챙길게."
미르가 일어섰다. 그리고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아빠."
"응?"
"사랑해."
그 말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나도 사랑해, 미르야. 너무너무 사랑해."
미르가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마킹하는 것처럼. 자기 냄새를 남기는 것처럼.
"이제 안 잊어버리겠네. 내 냄새."
나는 미르를 한 번 더 안아 올렸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풍성한 털, 따뜻한 체온, 꼬순내.
전부 기억에 새겼다.
"또 보러 와도 돼?"
"망원경으로는 언제든지. 근데 이 다리는... 모르겠어. 다음에 또 열릴지."
"그래도 기다릴게. 또 열리면 올게."
미르가 골골송을 불렀다.
"응. 기다릴게."
붉은 달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개기월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