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났다.
슈퍼문이 뜨는 밤이었다.
낮부터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뉴스에서는 연신 오늘 밤 천문 현상에 대해 떠들어댔다.
"오늘 밤 뜨는 슈퍼문은 올해 가장 크고 밝은 보름달입니다. 개기월식까지 겹쳐 달이 붉게 물드는 블러드문 현상도 관측할 수 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몇 시간 뒤면 라파엘이 말한 그 순간이 온다.
저녁을 먹고 바람이와 나무에게 간식을 줬다.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오늘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
바람이가 고개를 갸웃했고, 나무는 간식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밤 9시가 넘어가자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스쳤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과 기대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동쪽 하늘을 봤다.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했다.
평소에 보던 달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평선 위로 막 떠오르는 달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깝고, 압도적으로 컸다.
황금빛을 띤 달이 서서히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고등학교 천문부 시절에도 이렇게 큰 달은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기월식이 시작됐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서서히 삼키기 시작했다.
환한 보름달의 한쪽 끝이 어두워지더니, 점점 그 어둠이 퍼져나갔다.
마치 누군가 달을 한 입씩 베어 먹는 것처럼.
완전히 가려지는 순간, 달이 붉게 물들었다.
블러드문.
핏빛 달이 밤하늘에 떠 있었다.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고대인들이 이 현상을 보고 두려워했다는 게 이해가 됐다.
하늘에 피 묻은 눈이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붉은 달을 올려다보며 라파엘의 말을 떠올렸다.
문이 열린다. 망원경은 필요 없다. 직접 보게 될 것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붉은 달이 떠 있을 뿐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그냥 달구경이나 하라는 뜻이었을까.
그때였다.
달빛이 이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눈이 피로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분명히 달에서 뭔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빛이. 붉은빛이 달에서 지구 쪽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뭐야 저게..."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환각이 아니었다.
붉은 빛줄기가 달에서 시작해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서 있는 베란다 쪽으로.
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빛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리였다.
무지개다리.
망원경으로만 보던 그 무지개다리가 지금 내 눈앞에 실체화되고 있었다.
붉은 달빛이 굳어져 계단 형태를 만들고, 그 계단이 베란다 난간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나는 숨을 멈췄다.
믿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리 입구에서 빛이 번쩍였다.
누군가 서 있었다.
갈색 수도복을 입은 백인의 노인.
어깨 위에 비둘기가 앉아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었다.
망원경으로 보던 그분이 지금 내 눈앞에 서 계셨다.
성인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팡이 끝으로 다리를 두드렸다.
땅, 땅, 땅.
세 번의 울림이 밤하늘에 퍼졌다.
"문이 열렸습니다."
성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였다.
"오늘 밤,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습니다. 단, 자정까지만."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성인이 미소 지었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시겠습니까?"
누군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르.
미르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베란다 난간을 넘었다.
맨발이 다리 위에 닿았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폭신한 감촉이었다.
뒤를 돌아봤다.
베란다 창문 안에서 바람이와 나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바람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다녀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무도 창문에 앞발을 올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 다녀올게."
나는 녀석들에게 말하고, 다리 위로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두 걸음.
붉은 달빛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내 발밑에서 단단하게 버텨줬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리 중간쯤 왔을 때, 안개가 피어올랐다.
하얀 안개가 다리 위를 감쌌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걸었다.
안개 사이로 뭔가 보였다.
작은 형체.
하얀 털.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안개 저편에서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네 개의 다리로. 풍성한 털을 휘날리며.
"미르..."
내 입에서 이름이 흘러나왔다.
안개가 걷혔다.
그리고 나는 13년을 함께한 나의 첫 번째 고양이와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