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을 만난 뒤로 일주일이 흘렀다.
슈퍼문까지 7일 남았다.
나는 평소처럼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코드가 빼곡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자꾸 라파엘의 말이 떠올랐다.
"슈퍼문을 기억하세요."
"그날 밤, 하늘을 보세요."
무슨 뜻일까.
그날 밤 뭐가 달라지는 걸까.
생각을 정리하려고 잠시 일어섰다.
커피를 마시려고 주방으로 가는데, 현관 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바람이였다.
녀석은 현관 중문 앞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꼼짝도 않고.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저 자리.
미르가 좋아하던 자리였다.
미르는 현관 쪽을 유난히 좋아했다.
내가 외출하면 저기 앉아서 기다렸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 나와 마중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냄새로 내가 온 걸 알았는지,
항상 문 앞에 딱 서 있었다.
지금 바람이가 앉아 있는 건 바로 그 자리였다.
녀석은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람아..."
내가 부르자 바람이가 고개를 돌렸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눈빛이었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너도 기다려?"
바람이가 짧게 울었다.
냐아.
대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이라고 믿기로 했다.
나는 바람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녀석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바람이가 내 손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13년이었지. 너랑 미르랑."
바람이는 미르보다 네 달 먼저 태어났다.
하지만 입양은 미르가 먼저였다.
내가 미르를 데려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바람이를 입양했다.
그때부터 둘은 늘 붙어 다녔다.
같이 밥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잤다.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금방 화해하고 서로 그루밍을 해줬다.
미르가 아플 때 바람이가 옆에서 지켜봤던 게 기억났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바람이가 먼저 알았던 것 같다.
"미르 없으니까 심심하지?"
바람이가 다시 현관문을 바라봤다.
열리지 않는 문을.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나는 바람이를 안아 올렸다.
녀석이 내 품에서 꿈틀거리다가 이내 포기하고 가만히 있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팔에 전해졌다.
"그래도 우리 있잖아. 나랑 나무랑."
바람이가 그르렁대며 나를 바라봤다.
위로하는 건지, 위로받는 건지 모르겠다.
둘 다인 것 같았다.
저녁이 되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주 토요일, 올해 가장 크고 밝은 슈퍼문이 뜹니다. 이번 슈퍼문은 개기월식과 겹쳐 더욱 특별한 천문 현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화면에 붉은 달 사진이 떴다.
블러드문.
개기월식 때 달이 붉게 물드는 현상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이번 슈퍼문이 평소보다 14% 크고, 30% 밝게 보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슈퍼문.
라파엘이 말한 그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뭐가 달라지는 걸까..."
혼잣말을 하는데, 베란다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무였다.
녀석이 베란다 다용도서랍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서랍 위에는 리빙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불이나 옷을 넣어두는 평범한 박스.
나무가 리빙박스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서 뱅글뱅글 돌더니, 자리를 잡고 웅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저 자리.
미르가 제일 좋아하던 자리였다.
미르는 저 리빙박스 위를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본능 때문인지,
저기 올라가면 베란다 전체가 내려다보여서 좋았는지.
미르는 항상 저기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듯 앉아 있었다.
바람이나 나무가 올라가려 하면 하악질을 해서 쫓아냈다.
자기만의 왕좌였다.
미르가 떠난 뒤로, 아무도 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았다.
바람이도, 나무도.
빈 왕좌처럼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무가 처음으로 저기 올라갔다.
녀석은 리빙박스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나무야..."
나무가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다.
잠을 자려는 모양이었다.
미르가 늘 잠들던 그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무도 미르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7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나무가 5개월 때부터 미르와 바람이가 곁에 있었으니까.
"너네들도 보고 싶구나. 미르가."
대답은 없었다.
바람이는 현관 앞을 떠나 내 옆에 누웠고,
나무는 리빙박스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조용한 저녁이었다.
하지만 미르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또 안개였다.
하얀 안개가 사방을 감싸고 있었고, 그 사이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은발에 에메랄드빛 눈동자.
라파엘이었다.
"일주일 남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안갯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준비하세요. 문이 열립니다."
"문이요? 무슨 문이요?"
나는 다가가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라파엘이 미소 지으며,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나 다 말해주지는 않겠다는 듯한 미소였다.
"그날 밤, 베란다에 서 계세요. 망원경은 필요 없습니다."
"망원경이 필요 없다고요?"
"직접 보시게 될 테니까요."
그 말의 의미를 물으려는 순간,
안개가 짙어지면서 라파엘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고,
안개만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눈을 떴다.
익숙한 내 방 천장이 보였고,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문이 열린다..."
나는 중얼거리며 라파엘의 말을 곱씹었다.
망원경이 필요 없다고 했다.
직접 보게 된다고 했다.
대체 무슨 뜻일까.
창밖을 보니 달이 떠 있었다.
아직 반달이었지만, 일주일 뒤면 저 달이 가장 크고 밝아질 것이다.
그리고 붉게 물들 것이다.
"기다릴게."
나는 창밖의 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됐다.
바람이가 다가와 내 옆에 누웠고,
베란다에서는 나무의 코 고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일주일.
그때까지 기다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