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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ug 13. 2023

책임감의 굴레에 관하여

남편에게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강단이 있지.판단하는 것도 빠르고. 손이 좀 야무지지 않고 몇 개 흘려서 그렇지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야.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도 알고. 나처럼 우유부단하지 않아. 사치 부리는 타입도 아니고. 많지 뭐. 왜? 더 얘기해?" 에라이. '강점'이라고 하기엔 약하지 않나? 피 튀기며 카톡을 보냈는데 한참 동안 나의 답장이 없으니 남편이 한 마디 덧붙였다. "뭐든지 참 열심히 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거렸다.


나의 가장 큰 강점은 '책임감'이다. 직장, 가정, 대인관계 등 모든 영역에서 뭐하나 빠지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투철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직장에서는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구성원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가정에서는 남편을 확실하게 내조하고 아이를 살뜰하게 돌보며 집안일도 야무지게 해내는 워킹 맘이라 욕먹지 않는다. 풋살 클럽에서도 언니 동생들과 2년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500여 명의 다양한 업계 사람들이 카톡 친구로 등록되어 있고 아직까지 활발한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다만, '책임감'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힘겨울 때가 꽤 있다. 주어지는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뭔가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러하지 못한다. 인생의 희로애락보다는 주어진 '책임감'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고등학생 때 일이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말고 무단횡단을 해서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시험을 망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굳이 불의의 사고를 상상하다니. '학업'이라는 학생의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스스로 가엽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이에게 시판 반찬을 사 먹이면서 모성애가 없는 엄마라고 자책한다. 아무렴 한 끼 굶기는 거 보다야 나을 텐데. 반찬을 사서라도 밥상 차려주는 게 어디인가?


분명 책임감이 강점인데 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걸까?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역할에는 그만큼 책임이 동반되며 맡을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인정을 받으면서 내면에서 더 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커지게 된다. 이 욕구가 커져서 어느 순간 욕심으로 변하게 된다. 인정 욕구가 높은 사람은 책임감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자신을 더 채찍질한다. 책임감을 핑계로 인정받지 못할 까봐 두려워서 자신을 혹사시키고 몸과 마음은 더 무겁고 고단해진다.


책임감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고 건강하게 지켜나갈 책임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부터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때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타인으로부터 책임감이강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지 않아도 두렵지 않게 된다. '책임감'이라는 강점에 무거운 굴레를 씌울 필요는 없다. 나를 위한 건강한 책임감으로 더 사랑하고 아껴주자.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 주는 것이 타인으로부터 100번 인정받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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