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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은 귀로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하는 겁니다."

주간회고(24): 3.11-3.17

by 제이미 Mar 19. 2025

"경청은 귀로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지? 처음엔 황당했다. 듣는 건 당연히 귀로 하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강사님은 이어서 말했다.

"상대방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해 보세요. 이게 진짜 경청의 시작입니다.”


웃기게도, 요즘 ‘사일런트 줌’이란 게 유행이다. 화상회의 중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방식. 듣는 척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의 정점. 우리는 이미 디지털 시대의 ‘가짜 경청’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 네네’ 하면서 인스타를 스크롤하고, “맞아요”하면서 이메일을 작성한다.


팀원과의 피드백이나 1on1을 할 때 경청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이 한마디가 내 마음을 찔렀다. 추임새, 코멘트, 대꾸가 어렵다면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입으로 반복하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 참 쉽네. 그거 하나 못해서 말을 끊고 토를 달고 중간에 나의 생각을 설파했다. 이는 내가 공감을 못하고 소통이 부재하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왜? 내 머릿속 알고리즘이 이랬기 때문이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빠르게 문제를 파악하고, 솔루션을 떠올리고, “그래서 말인데..”라며 내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게 경청인 줄 알았다. 천재적인 착각이었다. 환자의 첫 문장만 듣고 “아, 감기네요. 다음! “ 하는 의사처럼.


잘 듣기만 하면 공감 능력도 올라간다고 믿었다. 허나경청의 진짜 목적은 더 나은 소통을 위한 것이다. 단순히 듣는 행위가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경청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라는 관심의 표현일 뿐이다. 진정한 공감은 "아, 그렇군요"라는 형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게 적절히 반응하며 경청한다면, 자연스럽게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


경청 타입 사용 설명서 (경청에 대한 한 주간의 고찰..)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내 반응은 다양했다. 구식 경청이라면 "힘들지. 근데 이렇게 해 봐."라며 바로 문제 해결 모드로 들어갔다. 마치 빠른 답변이 좋은 답변인 양. 가짜 경청이라면 "음... 그렇구나."라고 말하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진짜 경청은 "일이 힘들다고 느끼는구나. 어떤 부분이 특히 그래?"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 후에는 정말로 답을 기다린다. 스마트 폰은 주머니 속에. 


때로는 상대방이 공감보다 솔루션 원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다짜고짜 설루션부터 제시하기보다 먼저 감정을 되돌려준 후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와, 그거 진짜 스트레스였겠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인 거야?" 이렇게 상대의 감정이 가라앉는 시간을 주고, "이야기하면서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와 같은 유도 질문을 활용하면 대화를 더 깊게 이어갈 수 있다.


재밌는 사실은 GPT가 완벽한 '기계적 경청'을 한다는 것이다. 내 말을 100% 기억하고, 맥락을 파악하고, 적절히 반응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여전히 인간에게 경청받길 원할까? AI는 '이해'하지 않고 '처리'할 뿐이다. 진짜 경청은 감정적 연결이 필요하다. 당신의 말을 곱씹고, 그 감정에 공명하는 것. 이건 아직까 인간만의 영역이다.


관계별로 경청 모드를 다르게 가져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동료에게는 ‘함께 해결 모드’로 공감과 공동 해결에 초점을 맞춘다. 후배에게는 ‘성장 지원 모드’로 코칭과 성장 기회 중심으로 접근한다. 상사에게는 ‘이해 확인 모드’로 정확한 이해를 확인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리더로서 경청할 때는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를 방향성 있게 정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결론이 나지 않을 때 마무리 역할을 수행하고, 논의를 정리하며, 실행 방향을 제시하고 해결을 유도해야 한다.


내가 피곤하거나 상대가 비논리적이거나 같은 말을 반복할 때도 경청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핵심을 요약하고, 결론을 유도하며, 대화의 흐름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한 상황이 가장 문제라는 거죠? 이 부분부터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현실적인 '입으로 하는 경청' 훈련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3초 룰이라고 해서 상대 말이 끝나고 최소 3초를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웃긴 건 내 아이폰 스크린타임은 하루 평균 3.2초마다 확인한다고 한다. 상대 말 들을 때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 세상에, 폰 확인보다 사람의 말이 덜 중요하다니.


경청에 대한 뉴욕 편집장의 꿀팁들도 있다.

말을 중간에 자르지 않는 것.

말하고 싶을 때는 혀를 윗니에 바짝 붙이는 것.

불쑥 대화의 주제를 바꾸지 않는 것.

괜한 충고로 대화가 중단되지 않게 하는 것.

귀 기울이고 있음을 보이며 적절한 코멘트와 대꾸로 말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독려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멀티태스킹을 멈추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은 상대방을 가로막는 행위니까. 그것도 투명한 벽으로.


경청이 뭐 그렇게 어렵나 싶었다. 내가 말하는 속도는 분당 150 단어인데, 두뇌는 분당 900 단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는 처리 능력'으로 슬쩍 카톡을 확인하고, 다음 미팅을 생각하고, 점심 메뉴를 고른다. 우리 뇌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방랑자 같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경청은 멀티태스킹의 반대다. 단일 작업이다. 그래서 말입니다.

"경청은 귀로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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