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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Feb 23. 2024

무시 해도 좋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날 때부터 갖는 인간으로서 숭고한 존엄성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사람의 성격이 변하고, 존중받을 권리를 스스로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엔 무시해도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거다. 아래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은 되도록 무시하거나 마주치지 않도록 피하는 게 좋다.





 첫 번째 유형은 비아냥대고 불평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싫어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두 입 밖으로 꺼내도 좋다는 건 아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비아냥대거나 비꼬아 말하길 좋아하고, 사소한 일에도 불평불만을 잔뜩 내뱉는 사람을 보게 된다. 만약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가 우리의 발전 가능성과 믿음, 성공 의지를 깔보고 약 올린다면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다.



 그들은 마치 칼을 든 강도와 같다. 맞서 싸워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말은 곧 무기이다. 그 무기를 소홀히(가볍게) 다루는 사람 옆에 있으면 위험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잔잔히 칼에 스쳐, 결국 마음의 과다출혈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무능함을 자랑하는 사람이다. 사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모른다. 모르는 일에 대한 실수는 비판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인지하고 알고 있는 무능함을 자랑하는 건 비판받아야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자기계발서 읽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 '나는 자기계발서는 절대 안 읽잖아~', '맨날 당연한 이야기만 쓰여있고 다 똑같아!'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련하고 딱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말한 건 바꿔 말하면 이런 내용과 같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몇 번 한식당을 들렀다. 그런데 그의 입맛에 맞지 않았거나 하필 찾아간 곳이 맛없는 식당이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한국의 요리는 다 맛없고 그런 걸 왜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어떤가? 확 와닿지 않는가?





 위 두 유형의 사람은 모두 가엾고 안타까운 이들이다. 그렇기에 굳이 비난할 것까진 없다. 오히려 입만 아프다. 게다가 괜한 스트레스로 편도체만 활성화된다. 굳이 말을 섞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지 말자. 사람의 생각은 스스로만 바꿀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말해준다고 생각과 믿음이 바뀌는 일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사람의 믿음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단지 그들의 이해가 우리의 이해의 수준과 다른 경계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우쭐해 할 일도 아니다. 위 말의 뜻이 곧 우리가 더 높은 경계에 있다는 말은 아니니 말이다. '단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 그 수준의 높낮이는 결과로만 증명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더 높은 가치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신념을 믿고 꿋꿋하게 걸어 나아가는 것이다.



 생산과 창조는 어렵지만 시기와 질투는 쉽다. 사람은 쉬운 일로는 성장할 수 없다. 어려운 일에 도전해야만 한다. 가련한 이들에게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굳건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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