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이 Apr 09. 2024

집주인이 월세를 20만 원 올려달라고 한다


 2년에 한 번 극도의 스트레스를 불러오는 시기가 있다. 전세 만료일을 앞두고 임대인(집주인)에게 연락을 할 때다. 위장 전입 요청에서부터 보증금 동결을 담보로 무리한 요구(집수리 비용 부담)를 하는 등 지금까지 여러 차례 황당한 일을 겪어왔다.





 올해도 그 시기가 왔다. 임대인에게 연락을 하기도 전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입맛이 사라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걸 보더니, 아내가 이번부터는 자신이 일임해 일 처리를 하겠다고 했다.



 아내의 멘탈이 걱정됐다. 아내는 이런 일을 한 번도 처리해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좋은 경험도 될 것 같았다. '한 번 겪어보면 생각이 더 넓어지겠지..?' 라는 기대로 아내에게 내 짐을 나눴다.





 사실 우리 집의 전세 금액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임대인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한다 한들 내게 큰 손해를 끼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임대인의 태도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녀의 말투 때문이다. (사실 심리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스트레스는 거주의 불안정성인 것이 맞다. 임대인 심기를 건드려 계약이 해지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새로 집을 구하고 은행을 들락거리며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



 임대인은 상당히 무례하고 예의 없는 말투를 갖고 있다. 내가 자신의 자식뻘 되는 나이라고 내려다보는 건지, 임대인으로서 임차인을 내려다보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의 말투에는 그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사람과 대화하면 늘 기분이 좋지 않다.





"그건 좀~ ㅋ 저희도 퇴직을 해서요."


 이번에 전세금 외에 월세 20만 원을 추가로 내라고 말하며 보내온 문자다. 60대 나이에 은행장으로 퇴직한 남편을 둔 사람 치고는 굉장히 형편없는 말솜씨다. 생각해 보면 은행장인 건 남편이지 본인은 아니니까. 임대인의 경력을 가늠할 단서는 없다. 확실한 건 사람 대하는 데 상당히 서툴다는 것뿐이다.



 나는 늘 말의 힘을 주장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말로서 자신의 그릇을 깎아먹고 있었다. 안타까운 심정과 비통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을 4채나 보유한 자산가이기 때문이다.



 부러우면서도 대단했다. 임대인 말고 임대인의 남편이 말이다. 은행장으로 퇴직한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자산을 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굉장한 수완인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을 본받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더 많은 기회를 지녔음에도 그 무례한 말투 때문에 놓친 것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제 이 집과 이별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냉정히 판단해 보면 지금은 재계약을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일단은 임대인의 요구를 들어줄 계획이다.



 그리고 앞으로 2년. '2026년 2월 5일에 나는 집을 사서 이 집에서 나간다.' 그렇게 하겠다고 아내에게 선언했다. 정확히 어떤 집을 매입할지 동, 호수까지 정했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불편했던 감정이 완벽히 정리됐다. 단기적 목표가 분명해지니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제보다 더 힘차게 내일을 기대하게 됐다. 보다 빨리 내일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졌다.



 '내 집을 갖는다.' 그것은 더이상 막연한 목표가 아니다. 실질적이고 분명한 현실적 목표다.

 앞으로 2년 후 나는 이 글을 돌아보며 웃고 있을 것이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 평생 일개미로 살다 죽을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