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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May 07. 2024

후속 대화를 이끄는 매력적인 언어의 기술

600일의 도전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상당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째서일까? 그 대화는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된 가벼운 회의였다. 요즘 하고 있는 개인적인 일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현재 자기가 맡은 일이 어디까지 진행됐나를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계획과 돌파구가 있을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회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불쾌해졌다. 회의를 마친 뒤, 그 불쾌한 기분이 찜찜함으로 남아 한동안 마음 한구석을 괴롭혔다. 



 집에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비난과 비평, 험담, 뒷말 등 부정적 언어가 오간 것이 아닌데, 그 대화는 왜 불쾌한 느낌이 들었을까. 오랜 시간 깊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에는 다른 사람과 나눌 때와 다른 특이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건 바로 평가였다. 그와의 대화에는 상대방의 의견에 자기 견해를 더불어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정리해 말하자면, 그 대화가 불쾌했던 이유는 '의견을 말할 때마다 평가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아 그래서 오제이님은 OOO라고 생각한 거구나,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이야기한다. 표면적으로는 올바른 피드백이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대답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신이 어떻게 이해했는지 정리해 말하는 건 좋은 대화 습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 안에 내가 원하지 않은 '평가'가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두 번이야 '제 생각은 그게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나는 부정적 말하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암묵적 동의 아래 대화가 지속된다면, 대화가 끝났을 땐 찜찜함만 남는다. 더불어 대화 상대의 머릿속 나의 인상은 상대가 생각하고 정의한(오해한) 사람으로 남게 된다.





 아무리 좋은 피드백 스킬이라 할지라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다. 대화 사이사이에 상대방의 말을 요약해 답변하는 건, 그만큼 상대방의 말을 관심 있게 듣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안에 자기 생각을 덧붙이는 건 주의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이 피드백은 네가 한 이야기의 요약이야'를 전함과 동시에 '자기가 정의하거나 판단한 상대방의 모습을 담는 것', 그것이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의 기본 원리다. 



 요약 및 반복, 미러링 등은 상대방의 호감을 이끄는 좋은 대화 기술이다. 하지만 역시 모든 좋은 것들은 시의적절하게 쓸 때만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요약 및 반복만 한다거나. 모든 것을 미러링 하는 것은 자칫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요약, 반복, 침묵, 미러링, 질문, 의견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할 때, 비로소 대화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고 호감도 생긴다.



 늘 어려운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적당히인가 하는 점이다. 적당히는 무척 애매한 표현이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고 환경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 정당함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시도해 봐야 한다. 자신의 피드백이 전달될 때 상대의 기분, 언어의 뉘앙스, 비언어적인 표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심하게 관찰하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대화는 취조가 아니다. 상대방이 숨기고 있는 사실을 얻어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공유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대화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고 유쾌한 대화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후속 대화가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좋은 대화의 기본은 경청이다. 경청하는 대화는 늘 기분 좋은 울림을 남긴다. 그 사람과 또 대화하고 싶어지고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경청은 대화를 즐겁게 만듦과 동시에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경청이란 상대에게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내어주는 일이다. 상대가 하는 이야기에 모든 감각을 쏟아 오롯이 들어주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자산인 '시간'을 선물하는 행위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생각을 곰곰이 가늠해 보는 것 역시 경청의 일부다. 따라서 경청은 대화가 끝난 뒤에도 이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힘들겠지만, 특정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경청을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 나의 인생이 중요하듯 상대의 인생, 생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공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로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에세이를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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