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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May 14. 2024

맛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나요?

600일의 도전


 ‘나는 생각을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나?’ 얼마 전 점심을 때였다. 신디가 포비에서 새로 나온 베이글을 사 왔다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맛이 어떠냐는 물음에 그녀는 “맛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했다. ‘맛있다는 표현을 조금 더 섬세하게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곤 당시 내가 입에 오물거리던 달걀 김밥의 맛을 글로 표현해 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무언가를 자세하게 표현하는 것을 나는 선명하게 표현한다고 말한다. 본 것과 느낀 것을 자세히 전달하는 일인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말로만 들어도 머리 속에 맛과 그림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하는 기술이다. 자칫 높은 어휘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쉽지만, 내 생각엔 어휘력보단 정리하는 힘이 더 중요해 보인다. 어려운 말이나 표현은 듣는 사람의 어휘 수준에 따라 다르게 전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전문 집단이 아닌, 일반 대중을 향한 말과 글은 되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해 가볍게 표현하는 게 좋다.



 ‘생각하는 독서’는 표현력을 높이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생각하는 독서’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며 표현력을 수집하는 작업이다. 어떤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릿속에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올랐다면 좋은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런 문장을 메모장에 옮겨 수집하는 일이 ‘생각하는 독서’다. 그렇게 수집한 글들은 나중에 내가 쓸 글에서 꺼내 쓸 수 있다. 비슷한 장면을 묘사할 일이 생겼을 때 활용하는 거다. 물론 그대로 쓰면 표절이므로 자기만의 표현법으로 변형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하는 라디오 듣기’ 역시 표현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독서와 라디오의 공통점은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하나는 텍스트로, 하나는 말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나 청취자는 이야기의 내용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서와 라디오의 확실하고도 치명적인 차이점은 멈춤에 있다. 독서는 멈춤이 가능하지만 라디오는 힘들다. 힘들다고 표현한 이유는 불가능하진 않기 때문이다. 요즘 라디오는 다시 듣기가 잘 되어 있어서 언제든 오디오 파일로 재생하고 멈추며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라디오의 되감기는 텍스트의 되돌아 가서 읽는 것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더 추천하는 편이다.





 독서가 됐든 라디오가 됐든 중요한 점은 ‘생각하는’ 이라는 것이다. 그 둘 모두 경험한 후 그냥 지나가면 그저 오락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보가 돼 머릿속에 남는다. 나는 〈말금고〉 라는 메모 폴더가 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멋진 문장을 수집하는 메모장이다. 내가 책을 쓸 때나 기획서를 만들 때, 인용하는 멋진 문장들의 출처가 바로 그곳이다.



 말금고는 비단 글을 쓰는 데 뿐만 아니라, 친구나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표현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소위 ‘말 잘하는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니 여러분도 습관으로 만들어보길 추천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폰 메모장이나 삼성 노트, 구글 Keep 같은 메모 앱을 이용하면 된다.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텍스트 또는 녹음으로 문장을 기록해두자. 차곡차곡 쌓아두다 보면 분명히 활용할 순간이 온다.





 표현력은 우리 삶의 해상도와 비례한다. 높은 표현력은 세상을 더 또렷하게 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자녀와 함께 여름 휴가로 하와이 해변에 다녀왔다고 가정해 보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마신 시원한 음료의 맛’, ‘모래사장에서 선베드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던 순간의 느낌’, ‘이국적이고 독특한 음식들’, 그런 새로운 경험을 자녀에게 어떻게 표현해 주면 좋을까. “시원하다, 재밌다, 편안하다, 맛있다”라고만 말해주고 끝내기엔 부모로서 조금 쑥스러워진다.



 우리의 경험이 그저 순간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기록이 필요하다. 보다 선명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휴가에서 돌아와 직장 동료들이 “하와이는 어떠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재밌었어요, 맛있었어요, 좋았어요”라고 한다면 후속 대화로 이어지기 힘들 거다.



 표현력은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들 가운데 잘생기지도 예쁘지도 않음에도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멋진 표현력을 지닌 사람일 확률이 높다.



 지금 당장 노트를 펼치자. 떠오르는 대로 기록해 보자. 어제 하루 경험한 일들을 기록해 보며 우리의 현재 표현력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는 거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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