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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May 27. 2024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고려해야 할 1순위는?

600일의 도전


 장례를 치르며 나는 손님 접대와 안내 역할을 맡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은 손님이 적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사색과 명상을 번갈아 하며 수 시간을 홀로 있었다.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이따금 아내가 혹은 사촌 동생들이 다가와 말동무를 해주곤 했다.





 오랜만에 본 사촌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었다. 군대를 간 녀석도, 대학을 진학 중인 녀석도, 졸업 후 취직과 결혼을 고민 중인 녀석도 있었다. 한 명 한 명, 모두의 사연을 세세하게 들을 순 없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의 미래를 향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동생들은 나이는 성인이 됐지만 그 안에 담긴 그릇은 아직 여물지 못했음이 느껴졌다.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나 사고의 폭을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다. 형이나 오빠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깊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동생들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그들이 원하지도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해주고 말았다.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높은 확률로 관계를 망친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그 상대가 나의 형제일 때, 머리와 행동은 서로 다르게 맞물린다. 그들이 진심으로 잘 됐으면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게다가 그 녀석들의 고민이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잘 알 것 같다는 생각에 한참을 떠들었다. 이야기는 주로 ‘삶의 의미와 목표, 계획의 중요성과 방법’ 등 내가 자주 사색하고 글로 쓰는 분야였다. 고맙게도 동생들은 진심으로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따로 고민해 보겠다고 답해줬다.





 짧은 대화 뒤 다시 이어지는 혼자만의 시간. 나는 과연 나의 조언과 충고가 적절했는지를 되돌아봤다. 조언과 충고는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위기나 힘든 길 또는 올바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을 상대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 혹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올바름이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의 올바름을 판단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판단의 중심에는 나의 경험이 있었다. 나는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 혹은 내가 살아오며 목격한 것들에서 답을 구했고, 그 답을 통해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웠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그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나는 그들에게 옳은 길과 답을 제시해 잘못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현재 꿈이 없고 공기업에 들어가 적당히 오래 연봉과 연금을 받으며 살고 싶은 인생’에게는 ‘단단한 꿈을 갖는 방법’을, 또는 ‘지금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전공을 살릴지 포기할지 이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인생’에게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삶’에 대해 조언해 줬다.



 그 조언은 나의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들에게 적절했는가는 알 수 없다. 내 조언이 그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그들의 삶과 배경에 대해 충분히 듣지 않았다. 조언을 할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공감이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앞서야 한다. 





 충분히 들어야 한다.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하기 전에는 충분히 듣고 공감해야 한다. 경청이 없는 조언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치 당사자가 된 것처럼 그 사람의 이야기와 삶에 충분히 녹아들어 느낀 상태에서 조언을 떠올려야 한다. 그렇게 떠올린 조언만이 그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조언은 흩어져 사라진다. 조언을 듣는 당시에만 뭔가 그럴듯하게 들리고 깊이 마음을 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다. 금세 사라져 없어진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짧은 시간 몇 마디로 그들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언을 하기 앞서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경청 없는 조언은 자기 자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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