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무사히 즐기고 잠자리에 들어서기 전, 현관 문 앞에서 세상을 구경했다. 복도 난간에 두 팔을 얹고 대략 #666666 컬러(헥사 코드)로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봤다. 여름의 밤하늘이었다. 이렇게 복도에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큰 행운이다. 낡은 복도식 아파트라서 즐길 수 있는 ‘오히려 좋아’ 가운데 하나다. 나는 일명 ‘30년 된 아파트라 오히려 좋아’리스트를 갖고 있는데, 시리즈로 엮어 출간해도 될 정도로 그 양이 방대하다. 그렇지만 역시나 그것도 일로 벌여 책으로 내기엔 몸과 시간이 부족하다. 가끔 짬 날 때마다 블로그에 하나씩 꺼내 소개해 봐야겠다.
우리 아파트는 30년이 훌쩍 넘은 복도식 아파트다. 곧 40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어 가끔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주위에 같은 시기에 지어진 동년배 아파트들이 여러 단지 있다. 그들 역시 복도식 아파트로 지어졌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와는 다르게 낭만과 멋짐이 없다. 복도식 아파트의 치명적 단점인 ‘추위와의 사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 난간에 창문을 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복도식 아파트의 디자인은 투박하다. 직사각형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이 위로 우뚝 솟아있다. 그래서 성냥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요즘에 친구들은 성냥갑을 알려나. 아무튼 복도식 아파트는 성냥갑 느낌이고 계단식 아파트는 얼음틀 느낌이 든다.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역시 복도식 아파트가 단점이 더 많다. 그래서 요즘은 전부 계단식 아파트를 짓는다.
복도식 아파트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앞서 이야기한 추위다. 복도식 아파트는 현관 문을 열고 나오면 다이렉트로 바깥세상을 맞는다. 복도에 난간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난간이다. 밖과 안을 분리할 수 없어 공기를 공유하는 구조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여름은 더위보다는 벌레 문제가 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겨울이다. 한파가 몰려오면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복도 쪽에 설계된 상수도관이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아파트에 6년 동안 살며, 두 번의 동파 사고를 겪었다. 솜뭉치와 헌 옷을 수도관 사이에 쑤셔 넣어도 어찌해볼 도리 없이 얼어버리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미리 핫팩을 넣어 두던가, 밤새 냉온수를 조금씩 틀어놓아야 한다. 전적으로 일기예보에 의존해서 말이다. 매일 같이 한파가 예보됐지만 한파가 오지 않았던 날에는 ‘이런 식으로 물 낭비를 할 거면 우리 아파트도 난간에 창문을 달지...’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생은 늘 그렇듯 ‘오늘은 아니겠지...’ 싶은 날 한파가 온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겨울에 각종 개고생을 하고 시트콤 같은 나날을 보냈음에도 여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겨울의 일들을 잊는다. 그리고 현관 문 앞에 펼쳐진 탁 트인 시야로 매직 아워(해가 저물 때 나타나는 환상적인 뷰 = 노을)를 감상할 때면, ‘캬~~~’ 낭만에 흠뻑 취해, 그까짓 동파쯤은 천 번도 이겨낼 수 있다고 중얼거린다.
오늘만 두 번째 현관 문 앞에 섰다. 북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 번, 그리고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 더, 그렇게 두 번 자연과 마주했다. 홀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대지의 광활함을 새삼 실감한다. 그리고 그런 이 세상에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비로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이토록 넓은 대 자연 속에 성냥갑 같은 집이 한 채 있고, 그 집의 복도 위에 두 발로 선 나라는 존재가 있다. 그 존재를 인식하면 경이롭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몸서리치게 두렵기도 하다. 이 위대한 지구에 생명체로서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신비롭고 대견스럽다. ‘우리는 지구에게 벌레인가?’ 얼마 전 본 드라마 속 대사가 머리를 스친다. 심각해지지 말자. 우선 넘치도록 충분한 경이로움을 만끽하기 바쁘다. 역시 인생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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