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했다. 회사 내부 일이라 공개하긴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내 부주의였고 내 실수가 맞다. 선의로 한 일이었지만 하마터면 많은 사람이 곤란해질 뻔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게 문제였다. 나의 선의를 나쁜 쪽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는 내 실수에 대해 사과했고, 모든 것은 뒤탈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로 마음이다. 그 일이 있은 직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긴장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어졌다. 실수에 대한 자책감과 일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 사건을 잘 수습한 뒤에도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평소처럼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다. 나의 실수를 오롯이 나 혼자 안안고 해소해야 한다는 사실에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심호흡을 통해 가슴을 진정시켜봤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 걸어보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몰두하기도 했다.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사실 나의 실수로 문제가 커진 것도 아니고, 적당히 잘 수습됐기에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가벼운 질책으로 끝난 일이었다. 누군가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큰일이 아닌데도 마음이 그렇게 요동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무언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실수로 인해 나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다져 놓은 위치에서 밀려나고 가진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분명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 같다. 몸의 입장에서는 현재 생존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고 곧장 위기 대응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우리 몸은 위기 대응 모드로 들어가면 심박 수를 올린다. 투쟁 도피 호르몬이 분비되어 긴장감이 상승한다. 그러면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논리적 판단력이 흐려진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 놓여 흥분될 때는 모든 일을 한 번에 수습하려 해선 안 된다. 현재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추가적인 결정은 뒤로 미뤄야 한다. 실수는 더 큰 실수를 만들기 쉽다. 만약 내가 실수를 한 상황에서 만회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더 시도했다면 훨씬 큰 문제로 변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실수를 인정했고, 있는 그대로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보고했다. 그럼으로써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위기가 있다면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그 위기를 지켜봐야 한다. 그 안에서 감정이 사그라들고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언젠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날도 찾아온다. 도움을 구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게다가 도움을 구하는 것은 두 사람을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약점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노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아무리 가까운 가족 같은 사람이어도 말이다.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절반만 동의하고 싶다.
누군가는 실수나 슬픔을 혼자 감당하지 못한다. 누군가와 나눔으로써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한다. 세상에는 혼자 다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아직 그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미숙함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나씩 고쳐주고 응원해 줄 스승이 되어주어야 한다.
누구나 초보인 시절이 있다. 아무리 성공한 대기업 수장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일에는 실수를 한다. 전설적인 기업인으로 기억되는 스티브 잡스도 많은 실수를 했다. 최악의 결정을 내린 적도 많다. 세그웨이(스마트한 씽씽이)에 대한 극찬과 적극적 투자 유치를 하려던 행보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아이폰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보고받았을 때도 스티브는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실수를 발견한 날 밤, 스티브는 어떤 생각과 기분이었을까. 짐작하긴 힘들지만 그 역시도 무척 떨리고 화가 났을 것이다.
실수 앞에 태연한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그는 그런 척하는 것일 뿐이다. 누구나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긴장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신이 일으킨 사건을 실수나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거나 판단력이 낮은 사람인 것이다.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진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긴장과 두려움을 남들보다 빨리 이겨내는 사람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회복탄력성에서 비롯된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은 큰 실수를 경험하는 것이다. 잘못이 크면 클수록 회복탄력성은 늘어난다. 밑바닥을 쳐봄으로써 비로소 반등할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루라도 젊을 때 더 큰 잘못을 저질러봐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은 살아가며 몇 번의 큰 위기를 반드시 맞는다. 그때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마음의 동요로부터 얼마나 빨리 안정감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일은 실패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엄청난 실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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