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점심 시간, 한 동료가 내게 깊이 있는 물음을 던졌다. ‘오제이 님은 거의 10년을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일하는 게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당혹스러웠다. 이럴 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많지만, 그걸 어떻게 압축해서 전달할까 고민스러웠다. 그리고 혹시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하는 것이, 오히려 내가 맥락을 잘못 이해하는 행동은 아닐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래서 평소에 딴짓을 많이 해요. 그리고 일이 지겹긴 하지만 거기서 다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죠.’라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딴짓이란 자기 계발을 의미하고, 내가 말하는 다른 의미란 일을 멀리서 보는 관점을 이야기한다. 자칫 재수 없을 수 있는 그 두 단어를 맥락에 맞춰 조금은 부드럽고 가볍게 바꿔 말한 것이다. 너무 진지한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없애고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었다.
10년을 한 가지 직업으로 일한다면 지겨워야 정상일까?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떤 관점으로 직업을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은 지겹고 어느 날은 새롭다. 일상의 즐거움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재밌다. 그렇게 변주가 있기 때문에 더욱 생기 넘치고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 아닐까.
나는 주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직장을 ‘일’이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순식간에 지루해진다. 매일 같은 일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직군은 코딩이라,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제안이 들어오면 시안 작업을 하고, 일을 따내면 디자인된 이미지를 코드로 변환한다. 그리고 운영을 하며 기존에 작업한 코드에 비슷한 코드를 복제해 넣고 텍스트나 수치, 이미지를 교체한다. 그게 내 직군으로서 내 일의 전부다.
그렇게 일을 직군으로서 바라보면 쉽게 지겨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을 ‘과정’으로 바라보고 일을 하며 그 안에서 ‘이유’를 찾는다면 일이 전혀 지겨워지지 않는다. 일하는 이유는 일하는 목적과 비슷하다. 일하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돈을 버는 사람이 된다. 자칫 돈을 버는 기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러면 일에 회의감이 들기 쉽다.
그러나 일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하는 일이, 이 반복적이고 지루한 행위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일하는 데 힘이 솟기 마련이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아내의 즐거운 삶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즐겁게 살길 바란다.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나는 일한다. 내가 코드를 완성하고, 이미지를 업로드함으로써 아내가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하는 순간 순간이 행복해진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돈이 아니라, 일이 곧 아내의 행복이 된다. 매일 달라지는 아내의 얼굴만큼 매일 다른 느낌의 행복이 내게로 온다.
내가 일하는 두 번째 이유는 나의 성장을 위해서다. 여기서 나의 성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회사의 성장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주위 사람들의 성장이다. 그 둘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다. 내가 코딩 기술을 높이고, 더 많은 툴을 다루고, 기업 경영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만이 성장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성장하는 것, 그것이 나의 성장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회사가 성장하길 바란다. 더 크고 돈을 잘 버는 회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하는 일이 모두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한다. 회사가 성장하면 내가 누리는 것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우리 회사는 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나누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내게 회사와 함께 성장해도 좋겠다는 믿음을 줬다.
회사의 성장만큼 중요한 것이 동료들의 성장이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다.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하는 것은 1차적 목적일 뿐이다. 진짜 목표는 회사의 이익을 통해 근로자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없으면 회사가 없다. 근로자가 곧 회사다. 회사의 1순위 목표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성장시키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 목표를 나의 소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동료들을 더 기쁘게 해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들이 회사에서 목표하는 것을 성취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산다. 동료들의 행복과 즐거움을 기원하는 일이,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성취하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 목표를 갖고 있으면 직책이 CEO가 아니더라도 회사를 내 것처럼 대하게 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 회사는 나의 것이다.
회사와 동료의 성장, 그 둘을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일이 나의 진짜 직업이고 직무이다. 나는 업무 시간에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누군가는 이런 내 행동을 두고 CEO의 마인드라고도 부르고 일개미의 마인드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나는 누가 나를 뭐라고 부르던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의 성장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면 일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므로 내게 직장은 즐거울 일 투성이인 매직 아일랜드 같은 곳이다.
누군가 나에게 코딩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일을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답하겠다. 나는 나의 직업을 사랑한다. 나의 직장을 사랑한다. 나의 동료를 사랑하고,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그 모두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염원한다.
내 인생에서 나와 인연이 닿는 모든 곳에 성장과 사랑이 있기를 기원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행복해지고 내 삶 역시 풍요로워진다. 내게 삶과 직업, 회사는 그런 의미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만족과 이익을 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늘 일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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