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철학자가 묻는다
오래된 철학자가 내게 묻는다.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고 있는가?”
나는 종종 선을 넘는다. 그래서 내게는 규칙이 필요하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수많은 실수와 사건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규칙이 나를 바로 서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다.
어린 시절, 나는 도덕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 도덕적이라 주장하는 것들이 사실 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도덕은 오히려 비도덕적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었다.
나는 사상과 행동에는 자유가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생각을 도덕이라는 틀에 억지로 넣고 싶지 않았다. 반항했고 도피했다. 그럴 수록 돌아오는 건 비판과 스트레스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도덕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도덕상이 무엇인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하지 못한다. 소위 도덕적이라 불리는 것들의 정당성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을 쉽게 합리화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키워드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면 어떤 행동도 용서할 수 있다. 물론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어렵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건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꾼 건지...’로 유명한 《장자》의 ‘빈 배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러분이 뱃사공이라고 해보자. 강 건너에서 빈 배가 떠밀려와 내 배에 부딪치면 화가 나겠는가? 아마 대부분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면? 처음에는 소리치고, 이어 화를 내며 욕을 할지도 모른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사람이 탄 배에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빈 배일 때는 떠오르지 않던 생각이지만, 사람이 타는 순간 우리 뇌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추론이 감정을 지배한다.
이때, 마법의 키워드가 있다면 어떨까? ‘사람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라는 말을 마음에 진심으로 새긴다면, 아마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이 탄 배는 빈 배로 바뀔 것이다.
나는 ‘내가 도덕적인가?’를 묻기 전에 도덕이 어디에서 왔고, 누가 정의했는지 그 근거를 찾는다. 그리고 그 결론이 진정으로 객관적인지 곰곰이 따져본다.
근거 없는 확신은 불필요한 감정을 낳는다. 마치 ‘빈 배 이야기’처럼. 그래서 나는 내 행동이 도덕적 기준에 맞는지 따지기보다, 그 행동에 불필요한 감정이나 부정확한 이유가 개입될 여지가 있는지를 점검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이런 규칙을 지키며 나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산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