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철학자가 묻는다
오래된 철학자가 내게 묻는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오후 6시 약속을 앞두고 친구에게 연락이 온다. ‘나 병원에 들렀다 가야 해서 약속 시간에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0분? 오케이 알겠어. 나도 그 시간 맞춰서 도착할게.’
나는 종종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우려할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감정보다는 사실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물론 나도 운다. 슬프거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면 감정이 흔들려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감정을 느끼는 문제이지, 공감 능력과는 별개로 보인다.
내가 선천적으로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공감도 잘하고 감정적으로 휘둘린 적도 많았다.
나의 공감 능력 부족은 완전히 후천적인 것이다. 내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시점을 분명히 기억한다.
성공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공감 능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지나친 감정 소모이자 주의력 낭비라고 여겼다.
오직 나의 미래, 나의 이익, 나의 발전에만 몰두하며, 집요하게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때때로 이런 태도를 돌아보며 스스로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태도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잠깐의 불편한 마음, 이것은 나의 성장을 위해 거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변화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여겼다.
이제는 달라졌다. 성공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공감을 감정 소모나 주의력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말을 줄이고 그 줄어든 시간만큼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려 노력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느끼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대화하니 상대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선명히 그려졌다. 더 깊이 공감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시야가 생겼다.
경청하는 태도를 습관으로 만들고 난 후, 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성공에 집착하며 공감을 외면할 때보다, 공감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더 많은 인사이트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경청하는 시간이 늘어나니 말실수로 후회할 일이 줄어들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로부터 ‘듣기는 은이고, 말하기는 놋이라’ 했다. 말을 줄이고 경청과 공감하는 대화 습관을 가져보자.
이 습관이 몸에 뿌리내리면 내면의 성장이 가파르게 이루어지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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