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감수성이 유독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은가.
혼자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 말이다.
그들은 쉽게 외로움을 느낀다.
가을 날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외로워지고,
서늘하게 바뀌는 공기와 기온에도 우울감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신경 쓴다.
누군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을 예리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달라진 점이 있으면 거기에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한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닌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아 맞다! 얼마 전에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거야!’
혼자 상상하고 결론까지 지어버린다.
참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하게 군다.
이 같은 ‘우울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추구했던, 일명 ‘야만의 시대’였던 80~90년대와 달리,
이제 현대 사회는 개인의 가치에 집중하고 개인성을 보다 존중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 내면을 관찰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현대인들은 섬세해지고 있다.
심지어 섬세함을 넘어 감정이 예리할 정도로 날카롭게 날이 서기도 한다.
유리 멘탈이라고 하나?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다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자기 안에 깃든 우울과 화로 인해 당황하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감정의 발생 원리와 해석에 대해 알지 못하니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과도하게 해석해버리게 되는 것이 문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제대로 된 분석이나 상담 없이 대충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 결론내어 버린다.
그건 마치 팔이 부러졌는데 인터넷을 보고 적당히 처치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최근 들어 자신이 우울증이나 ADHD를 앓고 있다 말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그걸 두고 패션 우울증이라고 폄하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나는 이런 상황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부정적 인식이며,
이와 비슷한 수준의 또 다른 문제는 정신과 진료의 품질 문제라고 본다.
그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자격이 의심되는 의사를 많이 만나봤다.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진료를 마치는 의사를 본 적도 있고,
환자가 느끼는 약의 부작용을 두고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의사를 본 적도 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치료 방법이 병원마다 다르다 보니,
정신과라는 것은 의술이 아닌 기술의 영역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환자를 위해 세심하게 진료를 보는 훌륭한 의사도 있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적어 아쉽다.
정신과 진료에 보다 현대적이고 체계적인 진료법이 도입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정신과 감정을 다루는 학문이 기초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었으면 한다.
언제까지 정신과 상담을 챗GPT와 구글에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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