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디자인팀에 신입사원 두 명이 들어왔다. 20대 후반인 여자 사원과, 30대 초반 남자 사원이었다. 신입 사원이 오면 늘 그렇듯, 부서 막내의 안내를 받아 각 부서에 인사를 하러 다녔다. 사무실 한 바퀴를 쭉 돌고 거의 마지막 차례로 내 자리에 왔다.
'안녕하세요.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OOO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느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말이었는데,
유독 남자 사원에게서 쎄~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범상치 않은 느낌, 나의 내면 속 일에 대한 감각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아? 사고 칠 것 같아. 조심하자.'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에게 육감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오감, 즉 물리적이거나 심체적인 감각이 아니라,
일명 '짬'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경험에서 오는 일종의 '촉' 같은 감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촉이란 것은 무척 예리하고 영리해서
때에 따라 큰 사고를 피하게 하기도 하고, 운명적 만남이나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촉이 상황이나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인상'과 '말투'와 '행동'이다.
이 세 가지 비언어적 소통의 대표적 요소를 통해
상대방이 나와 결이 맞는지, 혹은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순식간에 구분해낸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심리 실험에 따르면,(이런 실험의 단골손님인 프린스턴 대학에서 진행한)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뽑을 때 능력과 경력을 살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첫인상을 통해 표심을 확정 짓는다고 한다.
실험에서는 아무 정보 없이 사진만 보고 투표를 한 집단과
사진을 포함해 이력 등 추가 정보를 주고 투표를 한 집단을 비교해 봤다.
놀랍게도 결과가 거의 동일했다.
사람들은 믿음직스럽고 유능하게 생긴 사람을 선택한다.
그 사람이 정말로 그런 능력을 가졌거나 말거나
자신이 살면서 경험한 정보와 만났던 사람을 토대로
'그런 외모를 지닌 사람은 믿을만하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차례 투표에 실수를 범했고
자신이 뽑은 대표를 끌어내리는 역사를 반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촉'이라는 육감에 의존해 많은 의사 결정을 내린다.
점심 맛집을 고르는 데서부터, 좋은 관계를 맺을 사람을 만나는 데까지
일상의 다양한 곳에서 촉이 작동한다.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판단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좋겠지만,
정보는 프레임을 짜기에 따라 얼마든지 상대를 속일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는 '물이 50%나 차 있어요'와 '물이 50% 밖에 없어요'가 있지 않은가.
따라서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촉을 예리하게 유지해야 한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남자 신입사원은 결국 사고를 쳤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지적과 호통을 받았다.
디자인 팀에서 기획팀으로 부서를 옮기는 전례 없던 일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옮긴 곳에서 더 큰 사고를 쳤다.
촉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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