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도착하면 허리와 목이 뻐근해 하루 종일 걸리적거리는 날이 있다.
원인은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쭈구리고 있어서다.
내가 타는 버스는 참 춥다.
추워서 몸을 웅크리게 되고 그렇게 한 시간가량 가만히 있다 보니 몸이 뻐근해진다.
서울에 전기버스가 도입된 뒤로 많은 버스가 냉난방을 약하게 튼다.
전기로 에어컨과 히터를 켜는 게 비용 소모가 크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탄 버스는 전기버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오래된 버스인데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차는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열기가 생성되기 때문에
난방을 할 때는 별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종점에서 출발할 때 추운 건 이해가 가지만,
1 시간여 버스를 타고 내릴 때까지 춥다면 그건 의도적으로 히터를 틀지 않은 것일 테다.
대체 왜 히터를 틀지 않는 걸까?
추측이지만 기사님이 졸음운전이 걱정돼 일부러 히터를 자제하는 것 아닐까 싶다.
내가 버스를 타는 시각은 새벽과 이른 아침이기에 기사님도 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밖은 아직 어두워 졸음이 몰려오기 쉽다.
히터를 틀고 승객이 단체로 자고 있으면 아무리 베테랑 운전사여도 졸음이 쏟아지리라.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퇴근길 버스에 있다.
출근할 때는 얼음장 같았던 버스가 퇴근할 때는 참 뜨겁다.
사람들의 퇴근 열기인가 헛갈리기도 하지만,
전기버스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걸 보면 히터를 켜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침에 히터를 켜는 버스를 만나면 하루 종일 몸이 평온하고
그렇지 않은 버스를 만나면 온종일 몸이 뻑적지근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버스 기사님의 정신력이 미치는 영향력이 이 정도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기사님을 만나야 하루가 편할 수 있다니,
이런 불확실성을 견디고 살아야 할까?
나는 나의 하루 컨디션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내복을 입어보기도 하고 일회용 손난로를 온몸에 붙이거나
충전식 전기난로를 주머니마다 넣어가며 몸을 댑혀봤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방법을 찾아냈다.
이 아이디어는 서울의 버스 정류장마다 설치돼 있는 엉뜨(온열 시트) 벤치에서 시작됐다.
추운 겨울날 버스를 기다리며 엉뜨 벤치에 앉아 있으면 온몸이 살살 녹는 기분이 든다.
자가용을 탈 때도 엉뜨를 켜 놓으면 순식간에 몸이 뜨끈해진다.
'이거다!'
나는 <휴대용 엉뜨>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보조배터리에 USB 열선을 사용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도 있었다.
우선 두 개를 구매해 테스트를 해봤다.
하나는 열선을 너무 조금 써서 열기가 부족했고,
다른 하나는 몇 번 사용하지 못하고 전선이 끊어져 금방 망가졌다.
시판 제품보다는 내가 직접 만드는 게 더 튼튼하고 강력할 것 같았다.
망가진 제품을 분해해 구조를 살펴봤다.
생각보다 간단한 구조에 자신감이 올랐다.
부품만 사서 조립해도 충분히 괜찮은 아이템이 나오겠다 싶었다.
무엇이든 다 파는 알리 익스프레스를 뒤져 열선을 구매했다.
넉넉한 용량의 보조배터리도 새로 장만했다.
직물과 부자재를 박음질해 커버를 만들어 씌우고 보조 배터리에 연결했다.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작업이었다.
나의 <휴대용 엉뜨>는 잘 작동했다.
이제 출근길 내내 몸이 살살 녹는 기분으로 뜨끈하게 다닐 수 있게 됐다.
엉뜨 아이디어는 금새 확장됐고
일명 <몸뜨>, 몸에 두르는 열선 패드까지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온몸이 후끈후끈, 움직이는 인간 난로가 되는 것이다.
몸뜨 제품은 탁월한 성능에 비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내가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몸에 둘렀을 때,
아내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거 입고 공항 가지 말아요, 폭탄 테러범으로 잡힐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 거울을 보니 나는 영락없는 테러리스트였다.
이후 디자인이 조금 개선돼 테러범 느낌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테러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몸뜨를 포기하지 않는다.
온몸을 녹이는 따스함의 매력을 이미 맛봤기 때문이다.
멋보다 중요한 건 오늘의 컨디션이므로.
그래서 오늘도 나는 테러리스트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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