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4일, 회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단축 근무를 시행했다.
제안 시기라 바쁜 와중에도 큰 결정을 해준 회사에 감사하다.
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몇 가지 선물을 챙겨 회사를 나왔다.
회사에서는 초코 파운드케이크와 트리 모양 화이트와인을 선물로 나눠줬다.
술은 안 마시지만, 근사한 화이트와인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무겁긴 해도 이걸 보고 기뻐할 아내 생각을 하니 발걸음만은 가볍다.
나는 퇴근 바로 집에 가기는 아쉬워 아내의 사무실로 향했다.
근처에서 볼일을 보다 아내가 퇴근하면 멋진 저녁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다.
카페 같은 데서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건 힘들어도, 책은 잘 읽는다.
그런데 가는 카페마다 만석이다.
스타벅스는 그러려니 했는데, 투썸플레이스나 로컬 카페까지 모두 사람이 북적댄다.
평일 낮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크리스마스 효과인 걸까?
불경기에도 장사를 잘 하는 곳은 늘 사람이 많다.
집에 갔다 다시 나오기는 조금 늦었다.
대책을 찾아야 했다.
문득 백화점이 떠올랐다.
지난번 아내의 쇼핑을 기다릴 때 봐둔 백화점 구석에 마련된 휴게 공간이 생각났다.
'맞아. 벤치도 있고 춥지도 않은 데다, 잔잔한 음악도 흐르는 꽤 괜찮은 공간이 있었지...'
나는 서둘러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올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 실외 벤치에서도 그럭저럭 있을만하지만,
요즘에는 거리에서 그렇게 넉넉한 벤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백화점으로 가서 공간을 찾아 벤치에 앉았다.
책을 펼쳐 한참 동안 집중해 독서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내 앞으로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루돌프 머리띠를 한 아이들과 산타 옷을 입은 아기들,
선물 보따리를 양손 가득 들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 등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다.
나는 마땅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연말 연초 분위기,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의 느낌이 참 좋다.
사람들이 모두 너그러워지고
연민과 사랑을 실천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기다.
그래서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그러나 막상 연말이 오면 그걸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서둘러 봄을 맞이하기 급급했다.
별로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버려
또렷한 인상 한 번 남기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진 연말 시즌이 계속됐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덕에
온전히 연말 분위기를 느끼게 됐다.
정해진 기간만 되면 척척 들어오는 월급에 대한 감사함보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주운 5만 원짜리에 더 기쁨을 느끼다는 마음이 이런 걸까?
아무렴 어떤가.
지금 이 순간, 이런 감동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훌륭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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