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어린 시절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해서,
엄마가 나에게 맛있는 것을 양보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머리가 자라고 나니
그때 엄마의 말은 있는 그대로 진심이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기만 해도
정말 배가 부르고 포만감이 느껴진다.
마음 안쪽에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고 허기가 사라지는
신비스러운 일이 종종 발생한다.
여기 빈 물병이 하나 있다.
표지나 장식이 없는 그저 투명하고 빈 물병이다.
물병에는 구멍이 몇 개 뚫려있다.
이때 물병에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구멍으로 물이 줄줄 새어 나올 것이다.
구멍보다 더 크고 센 물줄기를 붓지 않는 이상
물병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여기서 빈 물병은 우리의 욕구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들이붓는 물줄기는 우리가 평소 얻는 보상, 즉 물질과 감정이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욕구 안에 보상을 계속 채워 넣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물병에 구멍이 나 있으면 우리의 욕구는 절대 채워질 수 없다.
구멍을 틀어막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공허함에 몸부림치게 된다.
물론 잠시 잠깐 큰 보상(일시적 쾌락)을 얻으면 일시적으로 물통은 가득 차 넘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보상은 금세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러면 이내 물통은 텅 빈 상태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일상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우울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채워질 듯 채워지지 않고 연이어 반복되는 공허함에
우리는 완전히 지쳐버린다.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물병도
사실 간단한 원리만 깨달으면 너무 쉽게 물을 채울 수 있다.
원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간단하고 당연한 일이다.
바로 구멍부터 찾아 메꾸는 것이다.
줄줄 새는 틈을 막은 다음 물을 부으면 결국 가득 차게 된다.
이때 욕구라는 병 속에 난 구멍을 찾아 메꾸는 일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탐색하는 일과 같다.
병의 크기가 큰 사람은 그것을 찾는 일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구멍이 많이 난 사람은 그것을 메꾸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너무 초조해할 것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하나씩 차근차근 구멍을 메꾸는 데 집중하다 보면 누구나 어느새 단단한 병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구멍을 메꾸고 물을 부을 준비를 마치면
비로소 빈 병에는 이름표가 달린다.
<삶의 목적>이라고 불리는 이 이름표를 단 뒤부터
우리는 그 안에 귀한 것을 담고 싶어진다.
더러운 물은 피하고, 맑고 아름다운 물을 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운 좋게 병을 빨리 완성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조금 느리게 병을 가득 채운다.
병이 채워지면 또 다른 병을 만드는 걸 주저하지 않게 되며,
그렇게 병의 수와 크기는 점점 커진다.
이런 식으로 병을 채우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병을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는다.
병에 물을 가득 채워 완성했을 때의 기쁨보다
좋은 병을 만들고 맑은 물을 골라 병에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나의 먹는 모습을 보고 배부르다 말한 것은
어쩌면 엄마가 자신만의 물병에 물을 채우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진정 맛보고자 했던 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기에.
나는 엄마의 맑은 물이 되어 내면 깊은 곳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배고픔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내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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