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을 보면 무척 무례하다고 느낀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 보는 마음이 담긴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면 보통 이런 대답을 받게 된다.
'너가 어려서 그래, 너가 인상이 좋아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러면 나는 반문하고 싶어진다.
'만약 내가 높은 직책과 명성을 가진 사람이어도 이 사람은 반말을 했을까?'라고.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즈음, 어른들이 내게 반말하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저 나이쯤 먹으면 스무 살 정도는 까마득히 어려 보여서 그러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그 정도 나이를 먹어보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반말을 하는 건 나이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한테 돈이나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는 보통 존댓말을 하기 때문이다.
상점 주인이 손님에게 '어서 와, 원하는 게 있어?'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나?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사장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는 더러 보았다.
'어머 언니, 이건 얼마야?', '거기 알바 이리 좀 와봐', '야! 이거 제대로 된 거 맞아?' 등
손님이 사장에게 혹은 종업원에게 반말을 하며 하대하는 상황을 자주 봐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돈을 주는 위치에 있으면 상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비단 가게나 영업장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모두가 동등한 입장으로 일하는 사무 공간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존댓말을 꼬박꼬박 하다가도
자신의 부하직원으로 들어오는 게 확정되면 곧장 말을 놓는가 하면,
자기보다 직급과 나이가 어리면 1초도 고민 없이 말을 놓아버리는 사람,
성별과 나이에 차별을 두고 여우처럼 사람을 구분해가며 말을 놓는 사람 등
직장에서 말을 놓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의 이야기다.
팀장이 새로 오게 된 경력 직원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우리 팀 동료들을 회의실로 데려갔다.
'아~ 너가 그 일 잘한다던 중고 신입이구나? 얼마나 잘 하나 지켜 볼테니까 제대로 해'
'(옆 사람에게) 야, 내가 이런 애들 잘 알잖아.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 별거 없어. 실력 금방 뽀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이런 거 진짜 잘 해.'
팀장과 연줄이 있어 들어온 경력 직원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험담을 내뱉었다.
그렇게 면전에 대고 싫은 소리를 들은 건 군대에 있을 때나 있던 일이었다.
'도대체 뭘 잘한다는 건지... 그리고 왜 초면부터 반말인 건지...'
마음은 불같이 타올랐지만,
이전 회사에서 한 번 부당한 일에 깽판 쳤다가 쫓겨나듯 퇴사한 적이 있기에
이번만큼은 꾹 참고 지나가기로 했다.
사실 말을 놓는 게 다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말을 놓는 순간 예의까지 내려놓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 사이에서는 말 놓기를 꺼려 한다.
이전 회사에서 나는 취재와 인터뷰를 하며 책을 만드는 일을 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가끔씩 품위와 교양이 넘치는 사람을 보곤 했다.
그들은 점잖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말투에도 예의와 존중이 담겨있었다.
자신의 자녀보다 어려 보이는 내게도 꼬박꼬박 존댓말과 예절을 지켰다.
드물게 말을 낮춰 이야기하는 노인분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조금 달랐다.
반말이긴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웬만한 존댓말보다 예쁘고 품격 있는 말 하기를 했다.
나는 이런 분들이라면 말을 놓아도 반발심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귀담아듣게 된다.
반대로 반발심이 생기는 반말은 이런 식이다.
'야, 쟤, 너'가 담긴 명령조로 상대방을 하대하는 말이다.
이런 말투는 친구끼리 어릴 때나 쓸 법한 말이거늘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지 못하고 여전히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꽤나 많다.
내가 살짝 관찰해 본 결과,
동료에게 이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의 부모에게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애석하게도 이런 자녀를 둔 부모 역시 이런 말투를 사용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말 그릇은 곧 그 사람의 지성의 그릇이자 부모의 그릇이기도 하다.
동료 사이에는 '격'이 필요하다.
그 조금의 간격이 있어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높은 지성과 인품을 갖춘 사람끼리 모인 조직이라면, 그런 간격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조직은 꿈에서만 존재하지 않은가?
아무리 유능하고 멋진 사람이 모인 조직이라 하더라도
팔레토 법칙에 의해 결국 좋은 사람 20%와 좋지 않은 사람 80%로 나뉘게 된다.
그러므로 동료 사이의 '격'은 조직생활에 필수 요소다.
좋은 조직,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간격을 두고 지켜줘야 한다.
이때 그 간격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존댓말'이다.
누구도 기분 나쁜 사람을 만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서로 존중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가장 적은 힘으로 만들 수 있는 최상의 실천인 것이다.
나는 평소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었을까.
나의 동료, 아내, 부모님은 내게서 어떤 말 그릇을 보았을까?
지금 당장, 통화 녹음에 담긴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올 한 해 자신의 말 그릇을 갈고닦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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