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의실에서 허신사 님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부모님과 만나면 무조건 다투게 돼요.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우기고
결국 이런 얘기 이제 하지 말자며 끝나요.
부모님이나 저나 싸움닭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 있던 얼음분쇄기 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가 아직 어려서 그래.
산전수전 다 겪으면 나중에는 안 싸우게 된다.
철들면 알 거야.'
허신사 님은 입을 다물었고 그대로 대화는 끝났다.
우리는 종종 남의 문제에 답을 제시하려 든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로 자주 하는 실수인데,
상대방이 해결책이나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자의식에 취해 불필요한 답변이나 충고를 건네고 만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 충고란 것이 굉장히 오만하다는 사실이다.
만인에게 통용되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일어났던 특별한 경험을 일반화해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겪고 있는 감정적 문제를 들을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입을 닫고 그저 들어주는 것 아닐까?
상대가 조언을 구하더라도 쉽게 해결책을 내지 말고,
공감하며 위로해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감정적인 문제는 수학 문제처럼 답이 존재하는 게 아니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많은 상황을 고려해 대답해야겠다.
그리고 그로 인해 되돌아올 비판과 질책도 예상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살며 많은 오지랖을 부려본 결과,
감정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은 물가에 빠진 사람과 비슷한 것 같다.
물에서 꺼내주면 보따리까지 책임지라고 한다.
마음이 괴로울 때는 분별력이 떨어져
주위 조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덥석 실행에 옮겼다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난 뒤 엉망이 된 현실을 보며 모든 책임을 조언 쪽으로 돌린다.
그래서 조언을 할 때는 그런 비난이 돌아올 걸 생각하는 게 좋다.
만약 '뭐 그렇게까지 하며 조언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조용히 듣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게 더 좋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허신사 님은 어떻게 됐을까?
이번 명절에 부모님을 만났을까? 또 한바탕 했을까?
후일담이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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