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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빛에도 어둠이 깃들 수는 없다

by 오제이



#1

요즘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이 늘고 있다.

불현듯 찾아오는 허무함과 공허함을 메우는 데 그만한 게 없다.


글을 쓰고 그림 그리며 사는 삶에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게 수입을 늘려줄 것 같진 않아서

문득 씁쓸하고 허무해지곤 한다.


물론 당장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나의 노력으로 인해 누군가 기쁨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낙담하고 허탈해질 수밖에.


불확실성과 무관심, 그 공허한 울림으로 뒤섞인 공간 안에

드라마와 영화를 애써 욱여넣으며 아등바등 살고 있다.


조금 씁쓸하다.

나는 왜 일하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밤이다.



#2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는 건

분명 좋은 마음이고 선한 의도이지만,

세상에 그런 마음을 온전히 받아 줄

순수하게 빈 공간의 양은 그리 넉넉지 않다


누구나 저마다의 일이 있고 저마다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바쁜 일상 속 갈라진 빈틈 사이는

내가 끼어들기에는 너무도 좁고 캄캄하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많다.

더 좋은 글을 쓰고 더 멋진 그림을 그리며,

심지어 그걸 공짜로 나눠주는 사람도 많다.

대중이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이며 내 것을 택할 이유가 없다.


내게 아무도 자신의 노고를 들일 필요성을 못 느낄 거라는

암담한 현실 때문에 나는 종종 허무에 빠진다.

그게 내가 지금 일하고 싶지 않고, 내일 회사에 가기 싫은 이유다.



#3

힘을 다 소진한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건 쉽다.

그런 말을 한다고 잃을 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작은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걸 생각으로만 끝낸다.

쑥스럽고 낯간지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힘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을 때,

사람의 반응은 다음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1. '그런 응원이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며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부류.

2.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덕분에 의욕이 조금 올라가는걸?'이라며 따뜻한 마음을 품는 부류.


1번이 딱히 나쁜 부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1번 성향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면

자신도 그런 냉소적인 생각에 빠지게 될 확률이 높다.

응원하는 일이 쑥스러워지고 칭찬에 점점 인색해지게 된다.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는 티가 난다고 하지 않나.

비슷한 것 같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할 확률이 높다.

냉소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냉소적일 확률이 높다.


이런 말은 마치 환경을 옮기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런 방법도 고려해 보면 좋겠다.


'자신이 직접 그들의 환경이 되는 것'이다.


환경을 옮기는 것이 단기적 요법이라면

자신이 환경이 되는 것은 장기적 요법이다.

그만큼 오래 걸리고 힘든 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인 쪽이 훨씬 능동적이며 재미도 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에 겁을 집어먹어 희고 깨끗한 환경만 찾아다니진 않았으면 한다.

색보다 빛이 되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해 보길 바란다.


어떠한 빛에도 어둠이 깃들 수 없다.

주위가 어둡다면 스스로 밝은 빛이 되어보라.

작은 빛으로도 어둠을 밝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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