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보통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러면 뭔가 합리화되는 기분이 들어 조금 덜 분하게 느껴진다.
이 말을 좀 더 길게 풀어서 말하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사실 내 수준과 실력은 더 높지만,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니까?'
근데 이 말은 깊이 들여다보면 조금 화가 난다.
피할 수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대체 왜 그 일을 해서,
아까운 시간만 낭비한 걸까?
시작할 땐 될 것 같아서 한 일 아니었나?
아니면 누가 억지로 시키기라도 한 걸까?
만약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 속에서
은연중에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멈춰야 한다.
시간 낭비이자 체력과 비용 낭비이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슨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거람?
그 시간에 될 것 같은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떠오른다.
물론 알고 있다.
시작할 땐 될 것 같았다가도 나중에 가면서 상황이 엉망이 되는 일이 많고
그게 정말 현실이 됐을 땐 '이럴 줄 알았어'란 말이라도 해야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걸.
그렇지만 그 말이 진심으로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끝까지 자신을 믿고 진심으로 도전한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여기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을 추진하려는 어떤 기업의 대표가 있다.
두 직원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전권을 부여해 일을 추진시키려 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떤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싶을까?
A: '이게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잘 안될 것 같은데...) 제가 성공시켜보고 싶습니다'
B: '이 일은 분명히 잘 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B에게 일을 맡기고 싶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를 만났을 때 해결책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반면 은연중에 안될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안되는 이유를 찾아낸다.
말 그대로 '자기도 모르게'말이다.
자 그럼 이제 이렇게 바꿔 생각해 보자.
회사에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대표에는 자신의 이성을 대입해 보자.
'여기 당신의 인생의 명운이 달린 목표를 추진하려는 당신의 이성이 있다.'
당신이라면 A와 B라는 두 자아 가운데 누구에게 일을 시키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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