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를 만날 때든 무슨 일을 할 때든, 이 순간이 나를 부자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재보곤 한다. 내가 이렇게 부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한다고 하던데, 나는 지금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자, 내게 결여되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그 부이기에 나는 부를 갈망하고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 같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는 현재 가난한 상태인지를 스스로 되묻게 된다.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재미있게도 나는 한 번도 가난해 본 역사가 없다. 파산하며 모든 것을 잃어 본 적이 없다. 빚쟁이에 쫓겨본 적도 없다. 물론 유년 시절 유복하게 자라지 못했지만, 그것은 나의 가난이 아닌 내 부모님의 가난이었을 뿐이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의 굴레를 벗어난 뒤로 단 한 번도 가난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만들어 갈 인생에도 가난이라는 단어는 없으리라 믿는다. 내가 믿고 내가 꿈꾸는 미래에는 기쁨과 행복, 달콤함과 즐거움, 넘치는 풍요와 부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 이런 얼토당토않는 이야기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가 하면, 최근 내가 얻은 몇 가지 깨달음 덕분이다. 깨달음이라는 말에 부처가 얻은 진리 즈음을 예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깨달음, 정말 말 그대로 어떤 사실을 분명히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얻은 깨달음이 무엇이냐면, 하나는 '무엇이든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그것이 정의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무슨 당연한 말을 그리 거창한 듯 이야기하냐고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이 내게 준 울림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울림은 사람마다 다른 세기로 진동하는데, 마치 이런 것이다. '매일 30분씩 운동하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의심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야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 말의 울림은 어떨까?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지금 당장 내 마음속에 와닿지는 않기에 마치 남 일 보듯 하기 마련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어떤 진귀하고 보배로운 말을 들려줘도 소 귀에 경 읽기가 되기 쉽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그렇게 소처럼 살아왔는데, 어느 날인가 문득, 이런 당연한 말들의 참뜻을 이해하게 됐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불현듯 말이다. 마치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아침부터 영어가 들리는 기분이랄까? 그때부터 비로소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아침처럼 밝고 개운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두 가지 지혜를 마음 깊이 받아들임으로써 안식과 평화, 그리고 내면의 부를 얻게 됐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인생에 가난이 없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가난이라는 말을 정의하지 않을 것이 때문이다.
이토록 흥분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신비로운 기분을 다른 이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지만, 이것은 강요하거나 설명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아쉬울 따름이다.
부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도 닿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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